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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키진 Nov 12. 2022

시댁이 멀어지니
남편이 더 사랑스럽다

신혼보다 갈수록 남편이 좋아져

 

 토요일 이른 아침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간다. 늦잠을 자고픈 주말이지만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싼다. 좋아하는 소시지를 굽고 계란 프라이.. 후식으로 과일까지..  준비하는 동안 후다닥 도시락을 싸야 하기에 알람도 맞춰 두었다. 곤히 잠들어 버리면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나갈까 봐. 매주 감동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꿈나라에 있겠지. 귀찮은 척 생색을 내보지만 도시락을 맛있게 먹을 남편을 생각하면 아침잠이 많은 나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식당에 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늦은 오후에 집에 돌아오는데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잘 다녀와~"라는 인사를 우린 쉽게 하지 않는다. 물론 쉽게 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토요일만큼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편이 타고 문이 닫힐 때까지 배웅한다. 12층이 오길 그냥 기다리지도 않는다. 우리들의 의식인 뽀뽀 세 번과 층이 올 때까지 꼭 껴안고 있다. 이리도 좋을까. 





 

 결혼 16년 차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할 얘기가 많아 자는 시간이 자꾸 늦어지니 서로를 위해 말을 하고 싶어도 자제해야만 하는 부부. 우리만이 아는, 신혼보다 더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는 16년 차다. 특별할 것 없는 집에 보통 먹고 살 정도의 경제력에 아이가 셋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다. 뛰어난 미모도 중독될 요리 실력도 빵빵한 금수저도 고학력 인재도 아닌데 내 삶을 바라볼 때 흐뭇하다. 부러운 집도 비교하며 갈굴 남편도 바꾸고픈 아이도 없다. 딱 이대로 좋다. 만족한다.


 처음부터 결혼 생활이 순탄했을 거라는 오해는 넣어두길.. 다툼 없이 16년을 알콩달콩 보냈을 거라는 착각도. 우린 치열하게 싸웠다. '우리' 보다는 '나는'이 맞을지 모른다. 남편은 속 마음을 잘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꾹꾹 누르고 참았다 한꺼번에 왈칵 터뜨리는 화를 잘 내지는 않으나 한 번 내면 무서운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다. 난 정반대로 그때그때 어떻게든 표현해야 하고, 그냥저냥 좋게 넘어간 적이 없는 사과를 꼭 받아야 하고, 해명을 해야 직성이 풀이는 성격이었다. 남편이 봤을 때는 피곤한 사람이었을 테지만, 속아서 결혼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무언가의 매력이 있었겠지. 자의로 서로 동의한 결혼이었기에. 지금과는 다르게 신혼 때는 뚱한 표정과 툭툭 거리는 소리 아니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것으로 불만을 토로했었다. 영문을 통 모르는 남편은 속이 터져 죽을 만큼 답답했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뭐가 서운하다고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어쩌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랬었다. 그리고 사랑한다면 상대의 기분이 왜 상했는지 알아보려는 노력 정도는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일방적으로 삐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이 우선이었고, 다른 것을 바랐더라면 아마도 병원에서 가장 만나기 쉬운 의사를 결혼 상대로 점치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10년 가까이 일을 했으니 썸을 타도 몇 번을 탔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감은 원하면 언제든 달려와 줄 수 있는 시간 여유와 월급은 보통이더라도 스트레스 덜 받는 직장, 까칠하고 변덕스럽게 해도 귀엽게 받아줄 수 있는 넓은 품과 따뜻한 성격의 남자만 찾아다녔기에 외로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이상형이란 이상형일 뿐인 건가. 그래도 양심이 없을 정도로 욕심을 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장과 경제적인 여유는 포기했으므로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고, 뭐 이 정도는 불가능할 눈높이는 아니라 생각했으므로.


 어쨌든 이상형에 가깝다 생각하여 결혼을 했고, 나름 괜찮았다. 두 가지만 빼고는. 하나는 시댁이었다. 결혼 전 데이트할 때마다 걸려오는 전화. 하도 친하게 통화를 하길래 당연히 친구인가 싶어 물어보지도 않았었는데, 그 주인공이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소름.. 데이트 도중에 한참을 통화한 그 사람이 바로 그분이라니.. 결혼을 하기 전 꼭 체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남자 친구와 어머니의 친밀도이다. 친밀도가 10 중 3 이상이라면 무조건 말리고 싶다. 결혼하면 한국 남자들은 다 효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없던 효도 결혼하자마자 생기며 실행하기에 바쁘다. 3이었던 친밀도가 갑자기 높아지니 이런 경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난감할 텐데 이미 결혼 전부터 7은 넘어 보였다. 결혼식 준비를 남편과 했는지 시어머니와 했는지 헛갈릴 정도고 웨딩촬영을 따라오시겠다며 호기심이라 하기엔 과한 관심을 보여 부담스러웠다. 거기에 '내가 시어머니다' 하는 심보까지. 결혼하면 더 심해지겠다 했지만 상상초월이었다. 말로만 듣던 "네가 내 아들을 뺏어갔잖아" 하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말로 하지 않았을 뿐 행동은 모두 그러했으니 신혼 때 입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화끈하게 내 속마음을 말로 표현했더라면 속병은 걸리지 않았을 텐데, 남편 얼굴을 봐서 참았던 부분이 컸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인내해야 그것이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생각해 보니 저지르고 나서의 후폭풍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적응하고 살아온 남편에게 기대는 것은 무리 었으리라.  급하고 다혈질에 따다다 쏘아 부치는 통에 죄송하지도 않은 일을 죄송하다고 해야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였으므로. 아마도 남편이 자기표현에 서툰 것은 그러한 환경이 아니어서 솔직히 표현을 했을 때 받아들여진 경험이 부족했으리라고 본다. 사랑받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 사랑이 언제나 우선순위인 나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이 남자와 살면 살수로 갖게 되는 측은지심의 이유가 시어머니와 관련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 잘해주고 더 사랑해 주고픈 마음.






 "미안한데 여보, 난 이제 참기 힘들 것 같아.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데 그런 대우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16년 동안 존중하는 마음 없이 대하시는 거 당신 봐서 그래도 참아왔는데, 갱년기 나이에도 참아야 하나 싶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당신과 결혼한 건데 이렇게 계속 살 거라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당신이 입장을 분명하게 하지 못한다면 함께 사는 것도 고민해 볼 거야."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소중한 인생을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남편이 자꾸 시댁 문제로 인해 미워지는 게 싫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더 이상 그런 이유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주리란 기대를 이제는 접기로 했기에 당당히 요구하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웃으며 지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샘솟았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갱년기야 고맙구나.

그 힘겨운 몇 개월의 투쟁이 시작되다. 투쟁이 아니라 날 살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두자. 

(남편과 이런 일이 있고도 더 좋을 수 있는 이유? 과정? 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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