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몇 해 전, 남편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영어권 나라였는데, 자유 여행인지라 영어를 잘하는 남편에게 의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보리라 다짐했지만 아직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세 아이를 어렵게 맡기고 떠난 여행이라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며 기대도 했었다.
사실, 떠날 마음은 별로 없었다. 세 아이를 맡길 준비가 일단 부담이었고, 육아에 지쳐 몸도 마음도 가볍지가
않은 상태였으므로. 여행보다는 그냥 조용한 곳에서 혼자 쉬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어린 세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즐겁다기보다는 의무감이 컸고, 집과 다를 바 없이 엄마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음이라 늘 스스로 위로하면서 작은 기쁨에 감사하자고 마음먹었었다.
피곤하지만 그래서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둘만 가는 여행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던 감각과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3박 4일 중 하루는 좋았다. 지친 육아에서 벗어나는 게 꿈만 같았고 "지금 여기에 내가 진짜 있다고?"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마치 나는 아이와 같았다. 남편과는 여행 가치관이 좀 다르다. 남편은 새로운 곳에 왔으면 무조건 여기저기 구석구석 보고 느끼고 하는 여행에 목적을 둔 사람이고, 난 함께 여행을 온 관계에 더 집중을 하는 편인듯하다.
남편을 보면서 "그러면 혼자 여행을 오는 게 맞지. 피곤한 나를 끌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다. 나는 여유 있게 즐기고 싶어. 목적지가 아니어도 이쁘면 앉아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계획은 여러 곳을 훑는 거였어도 한 곳이 마음에 들면 더 긴 시간 머무를 수도 있고. 난 여행지보다는 당신과의 시간이 중요하단 말이야"
하루는 아이가 아빠를 따라온 느낌이랄까. 좋은 것을 보여주고 더 맛있는 것을 맛보게 해 주고픈 부모의 마음?
아이가 A를 먹고 싶다고 하는데, A는 맛이 없으니 B를 먹어보라고 권하는, 권하는 것도 아니고 반 강제적으로 B를 들이미는 부모. 과하게 표현된 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그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도 아마 사랑하는 마음에서 권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세 아이를 두고 여행을 왔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즐거움을 느끼라고. 그러나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 권하는 것이 이미 무리인 것이다.
영어가 자신 없어 낯선 땅에서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
아직 어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에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아이.
'사랑'이라는 무기로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는 것을 친절하게 안내는 해주지만, 상대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과 자유를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과의 여행에서, 경험으로부터 얻은 깊이 있는 깨달음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예전에 소통 수업을 하면서,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이제는 선택해서 먹어보고 싶다고.
지금까지 엄마가 맛있다고 골라준 한 가지 맛만 먹어보았다고.
다른 맛을 먹으려고 하면, 이것은 맛이 없으니 꼭 이 맛을 먹으라 권하는 엄마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서른이 되었는데 아직도 무슨 맛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고.
다른 맛을 먹으면 엄마가 화를 내거나 서운해할까 봐.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하면서 흘린 눈물이다.
"내가 할 거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존중해 주어야지.
좋은 것이라 추천하고 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안내해 주었다면 안 하는 것도 그들의 선택이라 인정해 주어야지.
싫다고 말하지 않는 것뿐, 상대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지 말아야지.
좋은 길로만 가라고 험한 길 다 닦아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지.
작은 선택 경험들이 쌓여 자신에게 맞는 큰 선택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