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대학 끝날 때쯤 은퇴할 생각이야!'
"엥?'
나름 고심해서 말했건만, 아내는 성의없이...
그동안 노후 관련 책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고,
부동산 투자도 열심히 해서 10년 동안 거래했던 아파트가 7채인데다,
1억 넘는 연봉도 몇 년째 받고 있다.
이 정도면 내가 준비한 은퇴가 궁금할만도 할텐데, 50넘은 아저씨의 뜬금없는 투정으로 들렸나보다. ㅠㅠ
사실, 나이먹고 나보다 어린 애들 눈치보며 회사 다니는 것도 싫고,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한 매일의 연속이 불편해서,
이런 내 마음을 들킨걸까?
몇 년 전부터 생각해 둔 55세 은퇴 계획 4가지 중에 2가지는 벌써 물건너 갔다.
모아둔 돈으로 사는 거랑 자본금 적은 사업을 하는 건 말도 안되고,
이직해서 다시 직장인이 되든지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큰 욕심없이 살든지 둘 중 택일만 남았다.
쌓아온 경력으로 직장인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회사가 싫어서 조기은퇴 하는건데 다시 회사를 선택하는 건 말도 안된다.
40 중반부터 사업구상은 이것저것 했지만 실행해 본건 하나도 없는데 평생 사업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치킨집 차리면 잘할까? 은퇴한 직장인이 무턱대고 프랜차이즈 차리면 십중팔구 망한다며 시작부터 초치는 소리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어쩔 수없이 욕심없는 삶이 가장 유력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
사실 내가 제일 바라는 삶이다. 아니 누구나 바라는 삶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많이 참고 살아왔다. 공부도, 일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은퇴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도 될까?
근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한 건가?
음... 글쎄...
바라는 건 50대 중반 은퇴해서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건데, 하고 싶은 일이 없다니...
은퇴든 명퇴든 앞으로 몇 년 안에 벌어질 일인데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 중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해서 오랫동안 좋아하던 여행과 취미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근데 돈이 될까?'
매번 여기서 막힌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10년 동안 꾸준히 하면 전문가에 가까운 실력을 갖출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설관리 부서에서 10년 넘게 일했더니 웬만한 물건은 뚝딱 고칠 수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취미생활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여행, 수영, 등산, 사진등 10년 이상 꾸준히 해보니까 주변에서 잘한다는 말도 곧잘 들었다.
'근데 돈이 될까?'
여기서 또 막힌다.
뭐든 돈과 연결하면 자신이 없다.
내가 1만 시간의 열정을 쏟았던 모든 것들은 오로지 나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5년 전 남들 다하는 운동이라 해서 우연히 시작한 골프에 완전히 빠져 살고 있다. 뭐든 골프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대부분 골프 치는 사람들과 만난다. 골프는 공을 쳐서 구멍에 넣는 아주 단순한 놀이 같지만 거기에 다양한 역학적 움직임과 플레이어의 감정까지 녹아있는 섬세하고 복잡한 운동이다. 4시간 넘도록 필드를 누비고 다녔는데 마칠 때는 항상 아쉬운 게 골프다. 세상에 이런 운동이 또 있을까?
취미가 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도 골프가 유일한데 열정과 간절함이 그 어떤 것보다 진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고 실력이 점점 향상되면서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자주 했다. 티칭프로를 염두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였더니 골프를 향한 마음가짐과 자세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았다. 땀만 흘리면 뭔가 다한 듯 보람을 느꼈던 연습이 좀 더 섬세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윙메커니즘까지 고려하게 되고, 스스로 연습 과정을 기록하고 샷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내 몸에 맞는 골프로 하나씩 만들어 갔다.
꿈이 현실이 될 때 사람들은 기적이라 부른다.
나에게는 골프가 꿈이고 현실이다.
'근데 돈이 될까?'
'잘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일이든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삶에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그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땀과 열정을 쏟으면 꿈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더라는 것도 살면서 얻게 된 지혜다.
아마추어 골프 선수가 되어 골프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평생 골프를 즐기면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내 마음이 바라는 대로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바라고 원하던 삶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거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