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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다섬 Apr 09. 2023

[교사의 시선詩選]무너진 날

폐허 이후 - 도종환

폐허 이후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히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부터  시필사를 시작했을까?

아마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부터였을 것이다.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냉혹한 시험 앞에 내 마음은 불안으로 희망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으로 들어갔던 서점에서 만난 시집에 나는 빠지게 되었다. 시집 속 내 마음을 울리는 시, 글귀를 따라 써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졌다. 그 힘으로일까? 임용고시를 이겨내고 나는 교단에 섰다. 


 저경력교사에게 학교는 정글 그 자체였다. 신비로운 아이들이 가득하면서도 곳곳에 이빨을 드러내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가득한 곳. 그곳에서 나는 아이들은 바르게, 지혜롭게 키워나가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불타는 모험가였다. 높은 기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수업은 수업대로, 생활지도는 생활지도대로 열심히 정말 열심히 했다. 이렇게 불이 나게 열심히 하는 나에게 아이들이 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나를 태워버렸다. 


  무엇보다 나의 노력으로도 아이의 노력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절망스러웠다. 아이를 둘러싼 가정환경이 너무나도 무너져있을 때가 그랬다. 어떻게든 새 학년에서는 잘하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런 다짐과는 다르게 학교생활이 정반대로만 흘러갈 때 아이의 눈에 고였던 눈물이 안쓰럽고 슬퍼 보였다. 그런 아이가 스스로를 포기하고 자꾸 엇나가려고 할 때면 그 아이를 둘러싼 세상 모두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아이와의 실랑이가 학기 넘어가며 나조차도 지쳐갈 때 이 시를 만났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이라는 구절.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는 구절.


  이 시의 구절들이 나와 그 아이에게 필요한 위로를 전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모든게 타버린 들판에서조차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풀이 돋고 물줄기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다시 푸르러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삶에도 다시 아이같은 새싹이 돋고 마침내 꽃이 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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