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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다섬 Jun 02. 2023

[교단일기] 슛!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아침 하늘은 회색 커튼을 친 것처럼 어둡고 침침했다. 날씨처럼 오늘 시간표는 무겁다. 1교시 놀이체육, 4교시 체육. 하루에 체육이 2번이나 있고 하필이면 비까지 온단다. 출근하기도 전부터 내 머리 위에 무겁게 먹구름이 생겼다. 


1교시 시작 종이 울리기 전부터 빗방울을 흩날렸다. 비 때문에 놀이체육을 못한 것이 벌써 4번이나 되었다.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된다는 생각에 내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지 1교시 야외 놀이체육을 단념했다. 어두워지는 내 마음보다도 더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4학년 아이들이 신기했다. 친구랑 싸울 때도 좀 그랬으면 좋으련만.


1교시가 실내 놀이가 끝나자 비가 멈췄다. 멈춘 걸로 모자라는지 햇빛이 회색 구름들 사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햇빛처럼 아이들 얼굴에 4교시 체육에 대한 기대감이 솟아났다. "선생님! 4교시에는 밖에서 체육 해요!"


"4교시 체육은 바깥에서 합니다.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오세요."

내 결정에 아이들은 운동화도 꺾어 신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하기도 한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며 우리는 체육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반이 쓸 수 있는 농구장 구역에서 이전 시간에 배운 드리블, 패스를 복습했다.


"이제 슛하는 방법을 배워보겠습니다. 잔디구장으로 이동해 주세요." 

잔디구장은 비를 머금어 조금 축축한 감은 있었지만 활동하기에는 충분했다. 슛 동작을 배우고 연습에 돌입하였다. 남학생들은 신나게 슛을 뻥뻥! 날리기 시작했고, 여학생들도 골대에 골을 넣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반에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승희는 체육시간을 싫어한다. 드리블 연습 시간에도 뒤에서 징징거리다 혼나서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슛 연습도 열심히 하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발등에 공이 잘 맞아 골대로 들어가는 기분이 좋았는지 열심히 뛰어다녔다. 제은이는 세워진 콘을 빠르게 뛰고 슛을 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승희야, 방금 자세 진짜 좋았어!" "우리 승희, 진짜 빠르게 잘 뛰네!" "오! 멋있어!" 내 칭찬을 들으니 승희는 정말 날아다녔다. 주변 친구들도 그런 승희가 신기한지 응원하기도 하고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이거 좀 속이 시원해요!" 외치며 콘으로 뛰어가던 승희가 미끄러졌다. 비를 머금던 잔디가 파이고 제은이 옷은 물기와 잔디로 범벅이 되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옷이 더워져서 제은이는 눈물이 났다. 제은이는 친구들과 화장실에 가서 옷에 묻은 잔디를 털고 화장지로 물기를 조금이나마 빨아드렸다. 


4교시 체육이 끝났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이 땀으로 열기로 빨갛게 익어 있었다. "선생님은 너희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까 기쁘고 대견해." 내 칭찬에 아이들의 얼굴이 빨간 꽃으로 피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평가가 아니라 칭찬이라는 말을 최근에 보았다. 아이들의 성장을 자극하기 위한 평가도 좋지만 꽃으로 피어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칭찬이 오늘은 더 마음 가깝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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