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바다섬 Mar 04. 2024

[교사의 시선詩選]개학날의 소망

물 위를 걸으며 - 정호승

물 위를 걸으며 - 정호승


물 속에 빠져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


물 속에 빠져

한 마리 물고기의 시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물 위를 걸으면

물 속에 무릎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물 위를 걸어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물 속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출렁출렁 부지런히 물 위를 걸어가라

눈을 항상 먼 수평선에 두고

두려워하지 말고


개학을 맞이한 아침. 아직 내 마음에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크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처음 맡아보는 5학년 한 해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등 마음속에 호기심이 튤립처럼 피어나고 있다. 오늘 아이들의 마음에 내 모습이 빨간 튤립처럼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작년 서이초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육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방학 동안에도 여러 지인들이 교사의 비전에 대해 걱정하고, 나의 상황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물어보곤 했다. 이런 물음에 희망적인 대답을 하기에는 분명히 현실은 교사의 열정과 노력에 그리 안전하지 않다. '열정적인 교사가 단명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들리는 교육계에서 나 또한 몸을 사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와 가족들을 위한 배려와 친절이 종종 서비스로 비치고 어떨 때는 작은 실수가 교사의 인생을 흔드는 빌미가 돼버리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더 해주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할 일만 해."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이 주말에 교실에 나와 아기자기한 환영 문구를 인쇄하고 붙이고 계셨다. 또 어떤 선생님은 지도서를 펼쳐보며 아이들이 더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학습방법을 고민하고 계셨다. 다들 분명 상처받은 선생님들임에도 물 위를 걸어가려 하신다. 


교사가 한 해를 걸어가는 마음은 어쩌면 물 위를 걸어가는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담담히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 길을 걸어가신다. 올해 모든 선생님들이 두려움 없이 그 길을 웃는 얼굴로 걸어갈 수 있길 소망한다. 




이전 09화 [교사의 시선詩選] 복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