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런 뉴스가 떴다.
나는 본의 아니게 이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 날은 토요일이었다.
강원도 인제
내가 군 생활은 했던 곳은 강원도 인제.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가게 된다. 논산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동. 도착한 곳이 청량리 역이었다. 기차를 갈아타고 다시 어디론가 이동한다. 물론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 어떤 곳에 떨어질지 마냥 불안했던 것 같다... 기차를 갈아타고 한참 가다 보니 원주였다. 원주에서 일박을 하고 다시 이동. 군용차를 타고 산속으로 산속으로 가는데 38선 푯말이 보인다. '38선을 넘어가는구나... 어디로 가는 걸까',라고 의아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도착해 보니 강원도 인제 현리였다.
군인의 낙
강원도 인제에서, 아니 모든 군인들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두말할 나위 없이 휴가다(제대는 그냥 꿈이었고). 그다음으로 바라는 건 외박이다. 외박은 원칙적으로 가족이나 친구가 직접 찾아와 면회를 신청한 경우에 가능하다. 고향이 근처이거나 서울만 돼도 비교적 가까워 면회를 자주 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처럼 고향이 남쪽인 사람들은 외박 기회도 잘 없다. 그때만 해도 지금에 비하면 교통이 여간 불편했던 게 아니다.
기다리던 면회
군생활 3년 하면서 면회는 거의 없었다. 어느 날 동병상련이라고, 화천에서 근무하고 먼저 제대한 친구가 면회를 온다고 한다. 이 친구가 군대를 먼저 가 있었을 때 친구들끼리 한번 면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근처에서 군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이 친구도 시간이 없었겠지만 면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기에 시간을 내서 오기로 한 것.
면회날
면회는 토요일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토요일에 맞춰 면회를 온 것이다. 면회가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외박 준비를 서둘렀다. 복장을 갖추고 내무반 신고, 당직 하사 신고, 당직 장교 신고를 끝냈다. 드디어 기다리던 외박. 신고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위문소를 향했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중대에서 마지막 관문인 위문소(부대 입구, 면회를 신청하거나 할 수 있는 곳)로 향했다.
비상사태
걸어내려 가는데 사이렌이 울린다. 비상사태다. 뭐지?
그래도 위문소까지 멀지 않아 내려갔다. 가서 보니 김일성이 사망해서 외박이 금지됐다는 것이다. 하필 지금? 이때? 자초지정을 모르는 친구한테 설명해 줬다. 황당해하며 둘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지만... 내가 외박을 나갈 수 없는 것도 아쉬웠지만 멀리서 친구 외박시켜 주겠다고 강원도 인제까지 와준 친구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위문소에서 한두 시간 시간을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외박을 못 나가고 내무반으로 돌아가는데 넋두리가 절로 나왔다.
하루만 더 살지....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이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