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선생님을 만났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번 서울 출장 때는 시간을 내서 연락을 드렸다.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장소와 드시고 싶은 것을 여쭤봤더니 처음엔 양재역에서 만나 결정하자고 하시더니 한 식당을 말씀해 주셨는데, "양재역에서 18번 마을버스를 타고, .... 절 앞에서 내려서..., 오래된 국시집이 있어... 거기서 만납시다."
국시집이라고 해서 흐름하고 저렴한 식당인 줄 알고 좀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하셔 소호정이라는 국시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서 보니 정갈하고 꽤 유명한 식당이었다. 선생님이 먼저 와 계셨다. 오랜만에 뵙는다고 잘 지내섰는지 인사를 드렸더니 선생님도 내 팔뚝을 잡으시면서 인사를 하셨다.
"아직 쌩쌩하네~"
팔뚝을 만지며 하신 말씀이 "아직 쌩쌩하네~"였다. 나도 쌩쌩한 나이는 벌써 지났지만, 팔순을 지난 선생님은 내가 쌩쌩하게 보일 정도로 기력이 없어 보였다. 허리가 아프셔 그런지 걷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을 처음 만난 지도 20년도 더 지났다. 그때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이 사람을 이렇게 바꿔 놓았다. 앞으로도 십 년, 이십 년이 또 금세 흘러가고, 나도 곧 노인이 될 거 같은 생각에 인생이 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국시와 국수의 차이를 알아?"
선생님의 제안으로 점심 메뉴는 안동국시와 수육을 시켰다. 평소 알던 국수와 달리 안동국시는 우동처럼 면발이 좀 굵은 편이었다. 그리고 안동 국시의 양도 꽤 많은 편이었다.
옛날에 같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자주 왔던 곳이라고 한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때 들었던 얘기를 해주신다며 질문을 던지신다.
국수와 국시의 차이를 알아요?
국시는 사투리잖아요.
아니에요. '밀가루'로 만든 게 국수이고 '밀가리'로 만든 게 국시래요.
밀가리도 밀가루의 사투리잖아요?
아니에요. 밀가루는 '봉투'에 담긴 거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긴 거래요.
ㅎㅎㅎ
그제와 농담임을 알아 들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더 이어가셨다.
봉투는 비닐로 만든 봉지이고 봉다리는 신문 같은 걸로 짜집기 해서 만든 봉지래요.
그렇군요. 선생님 이런 농담을 하시는 걸 보니 아직 마음은 쌩쌩하시네요ㅎㅎ
ㅎㅎㅎ
인간인 이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육체의 변화를 거부할 순 없다. 태어난 이상 싫든 좋든 어린이가 되고,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고...젊음과 이별하게 되고... 그러면서 언제나 에너지가 넘칠 것 같던 몸도 서서히 달라지고...
하지만 인간이기에 선생님처럼 마음의 젊음은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몸은 어쩔 수 없이 세월 따라 변해가더라도 정신은, 마음은 잘 간주하자. 언제나 쌩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