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을 맞은 보람이가 8월 1일 엄마와 아오모리에 왔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한 번 왔었는데, 5살 때 잠깐 왔었기에 거의 기억을 못 한다. 그러니 처음이나 마찬가지. 보람이가 아오모리에 왔을 때, 숲체험 온 거 같다는 소감을 들려줬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숲과 하늘밖에 안 보여 그랬을 수도. 그 정도로 아오모리는 자연이 울창하고 비교적 잘 보존된 곳이다. 물론 아오모리는 유명한 관광지가 꽤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엔 많은 곳을 데려가고 싶지만 초등학교 3학년... 어디를 데려가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고민 됐다. 평소 옆에 없는 만큼 아오모리에서 점수도 좀 따고 싶었다.
서울과 아오모리 직항이 있었고, 직항이면 인천에서 2시간 3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그리고 아오모리에 도착하기만 하면, 공항에서 시내 어디든지 30분 내에 이동이 가능하므로 매우 편리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중단된 인천-아오모리 직항이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코로나 때는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아오모리 여행을 가끔 얘기하기 시작했다.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직항이 생기면 한 번 오라고 했는데, 보람이가 경유를 해서라도 아오모리에 와보고 싶다고... 그래서 이번 여름에 동경을 경유해서 아오모리로 오게 됐다. 하필이면,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가 안 좋아서 비행기 운항에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비행기가 3시간 정도 연착. 평소보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무사히 아오모리 공항에 도착.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나갔다.
우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은 아빠 숙소 근처의 레스토랑인 너구리 식당(狸亭)에서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도 없고, 아빠 숙소 근처에 있는 유일한 식당이고, 주인들과 친하기도 해서 데려가 인사도 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이다. 30년 이상 경양식을 운영해오고 있는 사장님은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길에 케이크 가게 Siegfried(ジークフリート)가 있는데 거기에 들러 후식을 먼저 구입했다. 케이크를 구입하면서 레스토랑에 전화해서 식사를 예약을 했다.
스테이크와 고로케 정식과 단품 고로케를 몇 개를 시켰다. 시장해서 그랬는지 맛집이라 그런지 신나게 맛있게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저녁에 거의 손님이 없는 조용한 가게. 특히 코로나 때 손님이 많이 줄어 아직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평소 얘기 하기를 좋아하시는 사모님이 보람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넸다. 일본에 온 느낌이 들었겠지. 저녁 식사를 하고 5분 거리에 있는 아빠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디저트를 먹고 시내로 나갔다. 긴 여행으로 피곤했겠지만 시내에서 네부타 축제(青森ねぶた祭) 전야제가 열리기 때문에 가보기로 했다. 특히 불꽃놀이가 있다고 해서 보람이를 데려가보기로 했다.
전야제가 열리는 아스팜(青森県観光物産館アスパム) 근처로 갔다. 아스팜은 피라미드 모양을 한 아오모리의 관광 심볼들 중의 한 건물이다. 여기 1층 선물가게에서는 웬만한 아오모리 특산품을 다 만나볼 수 있다. 전야제가 열리는 아스팜과 근처의 모든 주차장이 만차였다. 어쩔 수 없이 외각으로 천천히 나오면서 주차장을 찾아보았다. 거의 만차였다. 어디까지 나가야 주차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외곽으로 나가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어 얼른 주차를 했다. 급하게 주차를 하고 보니 경차전용 주차장이었다. 주차할 때 주차공간이 좁다고 느꼈는데 경차 주차장이었다. 다른 곳을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스팜과 아오모리베이브릿지(青森ベイブリッジ)
전야제가 열리는 광장으로 가니 흥이 제대로 올라 있었다. 특히 네부타 축제기간 중에 각 팀에서 연주를 담당하는 참가자들이 악기로 경연을 펼치고 있었다. 네부타는 매우 박력 있는, 흥겨운 축제로 유명한데 네부타 전등차의 크기, 하네토(흥겹게 춤추는 사람들)도 영향을 주지만 생동감 넘치는 북, 피리, 템브린 등의 악기 연주가 축제를 더 달아오르게 한다. 흥이 많은 보람이도 연주를 듣더니 몸을 흔들기도 했는데..., 앞으로 남들 앞에서 춤추려면 연습이 좀 필요해 보였다. 악기연주 경연대회가 끝나고 대망의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네부타 마지막 날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대형 불꽃놀이가 있지만 전야제의 불꽃놀이라 성대하지는 않았다.
네부타 전야제 불꽃놀이
불꽃을 보고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찾아 집으로 돌아갔다. 경차 주차장이었지만 다행히 문제없이 차를 빼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네부타 전야제는 기억에 남지 않을까.
8/2
다음 날 가장 먼저 데리고 가기로 한 곳은 이와키 산 스카이라인(岩木山スカイライン)이다. 보람이가 스릴 있는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과천 현대미술관 다녀오는 길에 경사진 커브길을 지나왔었는데, 그곳을 지나올 때 너무 신나 하며 '이런 거 너무 좋아!'라고 했던 게 기억나, 제대로 된 커브길을 데려가주기로 했다. 바로 이와키 산 스카이라인! 아빠 숙소에서 이와키산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아오모리 공항을 거쳐 중간에 애플힐(Applehill)을 잠깐 들러 구경도 하고 휴식을 취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이와키 산(岩木山)은 쯔가루 지역의 후지산으로 불릴 정도로 지역에서 특별한 산이며 주위에 산이 없이 우뚝 홀로 서있는 모습도 후지산을 닮고 있다. 여기 오르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는데, 바로 스카이라인을 이용해서 차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스카이라인은 9.8km의 꼬불꼬불꼬불 꼬불길. 여기는 자동차로 많이 올라가지만 오토바이족들이 즐겨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입구에서 보람이를 앞 자석에 앉혔다. 안전을 위해 항상 뒷좌석에 앉았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이기도 하고, 스카이라인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는 앞자리가 좋을 것 같았다. 오르는 동안은 계속되는 커브에 연신 쾌재를 질렀다. 그리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아래 경치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와키산 9.8km의 스카이라인(좌) 아오모리의 후지산이라고 불리는 이와키산의 겨울 풍경(우)
스카이라인에 오르면 휴게소 겸 전망대가 있다. 날씨가 비교적 좋은 편이라 동해바다와 기분 좋게 펼쳐진 쯔가루 평야를 구경할 수 있었다. 스카이라인이 끝나는 곳에서 약 1시간 정도만 걸어올라 가면 이와키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여기 정상에서는 동해바다와 쯔가루 평야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보람이에게도 이 경치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슬리퍼를 신고 온 게 아닌가.... 외출할 땐 운동화를 신도록 얘기하는데 불편하다며 말을 안 듣는 편인데, 그날은 내가 챙길 게 많아 그랬는지 신발은 제대로 확인도 못 했다. 정상까지 가는 리프트가 있었지만 왠지 안전장치가 좀 허술해 보여 가족회의 결과 이번에는 안 타기로. 정상을 가볼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단념하고 이와키 산 스카이라인을 내려왔다.
시라카미산지 방문자 센터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세계자연유산 시라카미산지(世界自然遺産白神山地). 이곳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너도밤나무(ブナ の木)가 잘 보존 돼 있고, 그 분포가 세계에서 가장 넓어 30년 전에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때 함께 지정된 곳이 일본 남쪽 가고시마의 야쿠시마이다. 야쿠시마와 시라카미산지 모두 미야자키 하야와 감독의 센과 찌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라가미산지는 보호 중심의 자연유산이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다.(가고시마의 야쿠시마는 관광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시라카미산지 방문자 센터(白神山地ビジターセンター)로 갔다. 방문자센터에는 시라카미산지를 이해하기 쉽게 전시가 잘 돼 있지만 보람이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라카미산지의아오이케(青池) 팸플릿을 보고 가보고 싶어 했지만 차로 이동해도 1시간 30분은 더 가야 해서 다음에 꼭 가보자고 했다.
Annmong의 폭포. 오른 쪽 새가 곰딱따구리(큰딱따구리)
대신 20~30분 거리에 있는 Annmong의 폭포(暗門の滝)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여기는 실제 너도밤나무 숲을 걸어볼 수 있는 산책길이 있다. 20분 코스와 60분 코스가 있다. 출발하려니, 12시가 지났었기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전에 근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방문자 센터 건너편에 휴게소 식당 쯔가루 시라카미(道の駅津軽白神)가 있어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기대를 안 하고 간단하게 먹기 위해서 갔다. 보람이가 가츠동, 보람 엄마가 메밀국수 나는 간장라면을 시켰다. 나는 다른 걸 먹고 싶었는데, 보람이가 먹어보고 싶은 음식 중에 하나가 일본 라면. 그래서 간장라면을 시켰다. 간장라면은 좀 짜기 때문에 보람이 입에는 안 맞을 줄 알았는데, 맛을 보더니 내 라면을 다 먹을 기세였다. 엄마 메밀국수도 맛있다며 몇 젓가락을 뺏어 먹었다. 그래도 가츠동이 제일 맛있다고... 식성은 아빠를 닮은 듯하다.
우연히 저렴하게, 맛있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Annmong의 폭포로 향했다. 여기는 작은 선물가게, 식당, 그리고 너도밤나무 산책로 등이 있다. 그래도 너도밤나무로 세계 자연유산이 된 곳이니 너도밤나무 숲을 걸어보게 하고 싶었다. 주차장에서 너무밤나무 산책 입구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날씨가 더워 조금 힘들게 걸어갔다. 산책로 입구에는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보람이는 산책로로 가다 말고 계곡에 발을 담그고 놀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산책로를 걸어보자고 하니 별로 숲을 걷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웠지만, 슬리퍼를 신고 있어 조금 위험할 거 같기도 하고 해서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차장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계로 갔다. 이런 곳에 가면 눈빛이 달라진다. 시라카미산지의 심볼로도 알려진 곰딱따구리(クマゲラ)리 열쇠고리를 기념으로 구입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히로사키시(弘前市). 여기는 벚꽃으로 유명한 히로사키성(弘前城)이 있으며 한국의 드라마 로케지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우선 히로사키성 근처의 히로로(ヒロロ)라는 쇼핑센터로 갔다. 여기에 뽑기 오락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 원 정도 뽑기를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 보람이를 보니 일본의 뽑기는 정말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낀 얼굴이었다. 대신 다른 층에 있는 책방으로 가서 간단한 선물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수박 주스를 주문해서 잠깐 쉬었다. 그리고 히로사키성 주위를 차로 돌아보고 아오모리로 향했다. 아오모리로 돌아와서 저녁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모두 맛있게 먹고 약 5000엔 정도 나왔으니 저렴하게 맛있게 먹은 편이다. 온야채샤브샤브(温野菜しゃぶしゃぶ)라는 가게인데, 여기는 항산 신선한 재료만 고집한다고.
긴 글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보람이가 방학 때 아오모리 왔을 때 기록인데 얼른 정리해서 올리려 했는데 이제야 올리게 됐네요... 글을 정리하려다보니 생각보다 사진을 안 찍었네요...대문사진은 8월 4일 아오모리 현립미술관(青森県立美術館)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어서 와 아오모리는 처음이지(2)에서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