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꾸라지 Feb 14. 2024

엄마! 똥 싸고 있어?

보람이는 엄마 껌딱지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그렇다.

그래서 엄마가 힘들기도 하고, 엄마가 없으면 보람이가 힘들다.


어제는 보람 엄마가 중요한 회식이 있어 9시경에 집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

9시가 가까이 되자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엄마 왜 안 와?

곧 오겠지

아직 안 오네

잠깐만 기다려봐

언제 오는지 전화해 봐야겠다...


전화를 건다. 

어, 엄마! 어디야? 언제 와? 9시에 온다며? 왜 이렇게 안 와?

어 나 오늘 중요한 회식이 있다고 했잖아. 내일 학교 늦게 가도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

그럼 인터넷 조금 더 하게 해 줘

(휴대폰 인터넷을 1시간 30분만 사용하게 돼 있다)

응 그래

고마워 빨리 와야 해!

어 그래


9시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아빠, 엄마 왜 안 와?

조금 있음 오겠지


10시가 지나도 안 온다

아빠, 엄마 언제 와?

곧 오겠지. 늦었는데 그냥 자자. 자고 있음 엄마 올 거야

싫어! 엄마 올 때까지 안 잘 거야!

단호하다.


10시 30분이 지나도 엄마의 기척이 없다.

엄마 왜 안 오지?

응 곧 올 거야


보람이가 엄마한테 카톡을 보낸다.

답이 없다.

전화해봐도 돼?

해보고 싶음 해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빠, 엄마 카톡도 확인 안 하고 전화도 안 받아!

회식 중이라 그러겠지

한번 더 해도 받지 않는다

표정이 어두워진다

늦었는데 그냥 자자. 자고 있음 엄마 올 거야

싫어!


우리 잠깐 영화라도 볼까?

보람이가 인터넷 게임만 너무 하는 거 같아 채점 작업을 잠깐 쉬고 함께 영화를 시청하기로 했다.

나 홀로 집에를 보기 시작했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영화를 보며 하품을 한다.

늦었는데 그냥 잘까?

싫어. 엄마 기다릴 거야...

그러더니 울보 보람이가 슬피 울기 시작한다

왜 울어?

카톡도 안 받고 전화도 안 받고 걱정되잖아...

눈물을 뚝뚝 흘린다.

괜찮아. 회식하느라 전화기가 진동으로 돼 있겠지..

이렇게 안 늦는단 말야...

아빠가 있으니까 좀 늦는 거 같아.

그래도... 걱정 돼...

괜찮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보람이를 달래줬지만, 늦은 시간에 연락이 되면 당연히 불안해진다...

울면서 다시 하품을 한다.

보람아 엄마가 늦어질 거 같은데 그냥 자고 있을까?

침대에 누워 있으면 엄마가 곧 올 수도 있고..

...

우울하고 슬픈 표정으로 침대로 향한다.



함께 침대에 누웠다. 

아빠 얘기 좀 해줘

보람이는 아빠가 뚝딱뚝딱 만들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비교적 좋아한다.

[브런치북] 아빠는 무명작가 (brunch.co.kr)


보람이 기분이 우울하다. 이렇게 재우면 악몽이라도 꾸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내일 아침 기분도 안 좋을 거 같았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유치한 얘기 하나 생각해 냈다.

자 들어봐!



보람이 엄마가 회식을 갔어요.  

그런데 밤 9시에 온다던 엄마가 다음날 아침까지 안 왔어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보람이가 엄마한테 왜 늦었는지, 왜 아침에 왔는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어요

회식을 갔는데 소고기가 너무 맛있는 거야. 그래서 계속, 계속, 계속 먹었지, 배가 불러도 계속 먹었어.

그랬더니 배탈이 난 거야.

그래서 화장실에 갔거든




보람이가 끼어든다. 

아빠, 엄마 화장실에 빠지는 얘기 아냐? 너무 유치한데?

보람이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아냐, 그렇게 안 유치해 들어봐!

얘기를 계속해줬다.


엄마가 말했어요.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서 똥을 싸기 시작했어.

근데 똥이 1센티, 10센티, 1미터 계속, 계속, 계속 나오는 거야.

10미터, 20미터, 30미터, 40미터, 100미터,

똥이 천안까지 가고, 대전까지 가고, 부산까지 가고, 일본까지 가고, 

태평양을 건너고, 그래도 안 멈추는 거야.

그렇게 하다 보니 아침이 된 거야.

엄마도 힘들었어. 그래서 아침에야 집에 오게 됐단다.


끝!


아침까지 똥을 싼 거야? 화장실에 빠지는 얘기보다 더 유치해ㅎㅎ

다행히 보람이가 빵 터졌다. 

기분이 꽤 좋아졌다. 단순한 보람이. 아직 유치한 얘기가 먹힌다.

그 똥 아빠 머리까지 왔어ㅎㅎㅎ

보람이 옷에도 들어 있네ㅎㅎ


갑자기 보람이가 일어나 스마트폰이 있는 거실로 나간다.

왜? 어디가?

엄마한테 카톡 하나만 보내고 잘게

카톡을 보내고 다시 침대로 온다.

무슨 카톡 보냈는데?

엄마! 똥 싸고 있어?,

이렇게 보냈어ㅎㅎ

ㅎㅎ

장난꾸러기 보람이가 엄마를 한번 놀려주고 싶었나 보다.

다행히 그새 걱정이 사라졌는지 곧 새근새근 잠이 든다.


# 대문사진: 구글이미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청와대가 우리집보다 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