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고 두렵다

약해진 나

by 제니퍼씨

비출근 3주차- 이번 주 시작의 느낌은: 막연하고 두렵다.

어제는 동선을 고려해 여의도 공유오피스에 도착해 모닝커피를 한 다음 조금 흐릿해진 왼쪽 눈을 검사하러 예약해 둔 안과로 가 보았다. 이것저것 검사하더니 망막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고 레이저 시술을 바로 해야 한다고 했다. 십여만 원, 다행히 큰돈이 아니기에 바로 시술을 했다. 부작용은 없다고 했다. 부수적으로는 알레르기로 염증 분비물이 눈가에 고이고 있어서 다른 안약과 항생제 등 처방을 받아왔다.

어제 수술하고 나서 안약도 시간 맞춰 넣고 눈을 이리저리 굴려 보니 여전히 반투명 하얀 건 왔다 갔다 한다. 고인 분비물인가… 이제 양쪽 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일주일 있다 와보라고 했으니 기다려서 또 가 봐야지.

어제 만료가 가까워진 여권 갱신을 위해 여의도 근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여의도라서 그런지 사진관안에 연예인 사진이 즐비하다. 여권 사진이라도 약간의 터치를 해 주었다. 칙칙하고 불독처럼 처진 볼에 터치를 하니 약간은 밝아지고 턱선이 다듬어져 사람답게 됐다. 거북목에 올라간 어깨도 깎아 내렸다. 훨씬 날렵하니 보기 좋게 되었다. 사진을 찍으면 나이 인지가 되기 마련인지라 만족스러우면서도 뭔가 겸허해졌다.

이번에 퇴사 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도 마침 나왔다. 비만, 고지혈증, 간기능 위험, 담낭에 뭐가 있고.. 뭔가 경고 표시가 많아졌다. 고지혈에, 배출이 잘 안 되는 편, 건강 검진에서 조차 단식을 권한다.

오후에는 눈이 원근감도 없고 어차피 집중이 어려워 근처에 영화관에 아바타 4D를 관람하러 갔다. 스케일 있는 3시간이 넘는 긴 영화였다. 예전 같으면 100% 느끼며 집중했을 텐데, 영화 시작 후 40분 정도 지났을 즈음에 아직 두 시간 이상 남았다고 생각하니 지겨운 생각이 들어서 일어나서 나갈까 살짝 고민했다. 나이 때문에 문화생활이 권태로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요즘 10-15분 간격으로 아니면 더 빨리 도파민 충족을 위해 넘겨대는 유튜브에 익숙해져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이 들고 약해지는 것이 두렵고,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에는 느리고 능력이 부족한 내가 경력이 벗겨지고 들키게 돼 것이 두렵고, 문화도 즐기지 못하는 내가 되는 것이 두렵다. 부드러운 인간관계가 안 되는 내가 두렵고, 무엇보다 재취업이 안되어 돈을 벌지 못하고 궁해지는 내가 두렵다.

어젯밤 12 시가 넘어 그전까지 하루에도 몇 번 들여다본 온라인 예약사이트에서 정명훈/임윤찬 콘서트 티켓을 어렵사리 한 장 예약했다. 1층 좋은 자리라 조금 비쌌지만 이렇게 자리를 잡는 것도 운이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바타 4D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일요일에 혼자 오후에 임윤찬 연주를 듣는다고 행복할까, ROI (Return on Investment)를 생각했을 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당일 취소는 전액 환불이어서 환불해 버렸다.

뭔가 더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힘들어졌다.

지난 주말 동안 거절 이메일도 받고, 연락 주겠다던 헤드 헌터는 잠수해 버려서인 탓도 있을 것이다. 은행 잔고를 보고 그동안 적지 않은 돈이 입금되고 사라져 간 돈의 흐름을 본 탓도 있을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밀린 십일조를 내고 (십일조는 왜 제 때 못 내고 이렇게 정산을 하듯 내는지...), 잔고 걱정에 예전 회사에 다닐 때 샀던 자사 주식을 조금 팔고, 2025년 연말정산서류나 챙겼다. 내일은 인사과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부탁해 놔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면과 늦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