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가라앉고, 이유 없이 아프고,
어둠이 물결처럼 마음을 덮고 지나가는 날들이 있다.
나는 이 감정을 ‘가짜 슬픔’이라고 부른다.
실체가 없는데도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슬픔,
헤어나오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자리에서 맴돌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슬픔.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이
가끔은 한심하고, 가끔은 가여워 보일 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짜 슬픔에 허덕이던 나에게
진짜 슬픔이 찾아왔다.
그 때 알았다.
가짜 슬픔이 아무리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어도
진짜 슬픔 앞에서는 전혀 다른 무게였다는 것을.
진짜 슬픔은 숨을 멎게 하고,
가슴 안쪽을 뜨겁게 찢어놓는다.
진짜 슬픔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저 온몸으로 겪는 감정이다.
가짜 슬픔과 진짜 슬픔이 부딪힌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진짜 슬픔을 경험하고 나면
가짜 슬픔이 얼마나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를.
가짜 슬픔에 잠식되어 힘겨워하던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면
정신이 번쩍 든다.
가짜슬픔은 진짜 슬픔처럼 모습을 바꿔
언젠가 또 나를 덮치려 할 것이다.
교묘하고 순식간에 갑자기.
아무 일도 없는 날에 작은 어둠이
다시 나를 흔들어 놓으려 할지 몰라도
오늘의 이 마음만큼은 잊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슬픔의 가짜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글/그림 휘야야 https://www.instagram.com/hwiya_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