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공허

자꾸 잘 참는 '어른'이란 것이 되어간다.

by 경년

가슴에 무엇 하나 턱 하니 막힌듯한 요즘이다.

잎이 우거지고 색은 짙어져 그 생명력이 한창 절정이었던 뜨거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늘 그래왔듯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오곤 한다.

사람들이 흔히들 '가을 탄다'는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매년 여실히 느끼고 있는 기분이다.

온 힘을 다해 빛의 양분을 받아낸 나무의 잎들이 하나 둘 그 생기와 녹음을 잃어가고,

낙엽이 되어 땅에 내려앉을 즈음이면

한 해가 또 저물고 ‘올해도 별일 없이 지나갔구나’ 하고 깨닫는다.

어린 시절엔 이 계절의 허무가 훨씬 더 깊고 잦았던 것 같다.

이제는 봄과 여름의 인상도 예전만큼 강렬하지 않으니, 가을의 공허함도 많이 덜해진 기분이다.

그럼에도 일전에 얘기한 바와 같이,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우울하고

공허해지는 날들이 계절처럼 찾아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예전에는 이 공허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모른다.

그때는 이런 시간들이 참 쓰고 고달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런 시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모든 것이 영원하리라 믿었고, 그래서 곧 죽을 것 같이 아파하고 또 사랑했었다.

지금은, 세상을 조금 안다고 착각하는 만큼 그 무력감과 공허, 불안도 견딜 만해졌다.

어린 날에는 뜨거운 열탕을 묵묵히 참는 어른들을 보면 괜스레 멋있었다.

발가락만 담그고도 호들갑 떠는 내가 싫었고, 나도 아픈걸 잘 참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했다.

어느덧 '어른이라기엔 아직 어리고, 애라고 하기엔 또 살만큼 산' 나이가 되었다.

이 나이까지 어쨌든 살아본 결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픈 건 시간이 지나도 아프다는 것이다.

다만 아는 아픔이라 화들짝 놀라지 않을 뿐.


매도 맞아본 놈이 잘 맞는다고.

30년을 수도 없이 맞아본 우리는 어느새 생존하며 겪는 아픔에 무뎌지고 있었다.

어린 내가 어른스럽다고 여기는 것의 본질이 꽤나 서글픈 것이었단 걸 깨닫는 요즘이다.

점점 호들갑이 허락되지 않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어쩔 수 없이 나의 삶에 굳은 살이 생기는 것을 피할 수 는 없겠지만,

아무쪼록 최대한 느리게 익숙해지면 좋겠다.

무력하고 외로울때 쏟아낼 수 있는 어리숙한 내가 남아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