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이 있어 새벽 3시쯤 집을 나섰다.
공항 가는 길에 이른 아침을 먹으려고 24시간 영업을 하는 감자탕집에 들렀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새벽녘에는 뜨뜻한 국물이 당긴다. 그냥 '배부르다'가 아닌 '든든하다'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다.
새벽 3~4시의 감자탕 집은 대부분 취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늦게 까지 술을 마시는 청춘들 혹은 늦게까지 일하고 귀가하기 전 술을 마시는 사람들, 각자 모두 다른 사연으로 술을 마신다.
그 속에 말짱한 정신으로 앉아 있으면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옆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린다. 심지어 내가 앉은자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건너편 테이블의 이야기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최근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야기, 그 드라마 속에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 자신의 사랑이야기,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속상한 이야기 등이 여과 없이 들려온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의 젊은 시절에도 똑같은 내용으로 새벽 감자탕집에서 떠들었을 이야기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근본적인 연애사는 바뀌지 않았다.
나의 20-30대는 연애에 미쳐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애를 하는 중에는 상대방에게 미쳐있었고 연애를 하지 않은 중에는 새로운 연애상대를 찾기 위해 미쳐 있었다. 돌아서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선자리가 있었고 오다가다 만나는 가벼운 사이도 있었고 사내에서 몰래 만나는 사이도 있었고 수년을 이어갔던 사이도 있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나의 일생 목표처럼 행동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진 톱니바퀴와는 모양이 달라 맞춰서 굴러가지 못하고 삐그덕 대다가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때는 커플이 아니면 이 세상을 살아남기 힘들 것 같이 느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사귀던 사람이랑 가을에 헤어졌는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지?'였다. 나는 도저히 혼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집으로 피신을 갔었다. 나에게는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가족이 있었는데 왜 그리 호들갑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두려움이 참 하찮기만 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혼자라는 것이 참 두려웠던 것 같다. 그것은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직장 동료 심지어 전 남자 친구까지 모두 결혼해 버릴 때 나는 혼자 남겨진 것 같아 심통이 나기도 했었다.
내가 원하는 시점에서 한 참 지나긴 했지만 나와 모양이 맞는 톱니바퀴를 만나서 지금은 잘 굴러가고 있다. 지금 남편을 만났을 때, '이 사람과 결혼하면 좋을까?'가 아니라 '이 사람과는 계속 쭉 이렇게 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몹시 들었다. 결혼은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이다. 폭삭 속았수다 에서는 '쳐들어 오는 사랑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결혼과 같은 운명은 쳐들어 오는 것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년간 한 남자를 찾아 헤매었고 드디어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정도 하면 내 인생은 성공이다. 내가 가진 결핍이 무엇이든 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작은 것이다. 그 정도면 폴짝 뛰어넘어 자신 만만하게 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뭐가 부족한지 자기 성찰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된다. 만에 하나 못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결혼 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곁을 지키지 않아도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은 분명히 있으니까.
어쩌면 둘이 하는 삶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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