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일기장을 들춰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어느 날 차장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젊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와 같이 한마디로 말하기 힘든, 누구나 자기만의 의견을 갖게 하는 질문이다. 차장님은 40대 후반정도 되셨고 당시에 회사일로 고민을 많이 하고 계셨다. 어른이 물으셨기에 대답은 해야겠는데 평소에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어 그냥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데로 말씀드렸다.
"음... 젊음은 무한한 꿈과 희망이 있는 그런 시기 아닐까요?"
그러자 차장님은 실망한 듯이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그럼, 50, 60 대는 꿈과 희망이 없단 말이야? 50대 아저씨도 예쁜 여자와 데이트하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어."
약간 썰렁한 유머로 분위기를 편하게 한 다음 차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에 젊음은, 선회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게 젊음이야. 나이가 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지고 선택의 폭이 좁아지게 되지."
선회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것이 젊음이라...
새롭게 도전할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역동적일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용서되고 뒷받침될 수 있는 것이 젊음이다. 젊기 때문에 회사 잘 다니다가 그만두고 노점상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젊기 때문에 서슴없이 다른 업종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면을 보면 젊기 때문에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특권이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하는 내일 보다 친구가 하는 일이 더 좋아 보이고 이 직장 보다 저 직장이 연봉과 대우가 더 좋아 보여 젊은이들은 갈팡질팡한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고 어떤 것이든 주어진 대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고민하게 되니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거리를 뒤로한 채 새롭게 시작하려고 결심한 이상, 젊다는 것 하나만 붙들고 전진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젊음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항상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이다. 세월이 많이 지나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고 기력이 약해져도 항상 도전하는 젊음을 갖고 싶다. 내가 한계를 긋지 않는 한 정신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지금 나는 예전의 차장님보다 많은 나이가 되어 말을 할 수 있지만, 과거의 그 차장님은 꼰대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차장님을 어려워하던 나는 참 어렸다. 우리의 ‘젊음’에 관한 개똥철학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20년 전 나는 '세월이 많이 지나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고 기력이 약해져도 항상 도전하는 젊음을 갖고 싶다'라고 했는데 나는 여전히 세상 공부를 하고 있고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내가 내린 ‘젊음’이라는 정의에 부합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살면서 나만의 기준으로 ‘행복’, ‘사랑’,’ 죽음’ 등에 관해서 생각을 정리해 놓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정보와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는 요즘,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정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의 것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명심하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고 순간순간 자각하라.
한눈팔지 말고, 딴생각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피라.
이와 같이 하는 내 말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대의 길을 가라.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