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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ㅠㄴ Sep 21. 2022

My life is GOOD TOPIC



“빵 만드는 것도 배우고 싶고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싶고 영어도 배우고 싶어!”

환희가 말했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낮은 텐션을 유지하던 환희는 종강과 동시에 열정 부자가 되었다. 환희의 열정에 내심 놀랐지만, 덤덤히 대답했다.

“좋네. 다 해봐. 나도 영어 배우고 싶었는데.”

대답하기 무섭게 환희는 반문했다.

“그치? 그럼 우선 상담을 받아볼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마음먹기까지 한 계절, 상담 예약하기까지 한 계절씩은 걸리지 않던가? 환희의 추진력에 또 한 번 놀랐지만 내 일이 아니기에 떠오르는 대로 대꾸했다.

“상담... 상담 좋지... 나 다니는 스터디카페 있는 층에 어학원 있던데 거기 한번 가봐”

“그래! 가자!”

“어? 지금?”

“응! 가서 상담만 받아보자!”


당황해서 어물쩍거리고 있는 나를 끌고 환희는 거침없이 어학원으로 향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커리큘럼을 듣고 있었고, 환희는 내 학부모로 온 마냥 내 커리큘럼 상담까지 함께 하더니 오전 열 시 반 수업과 열한 시 반 수업 중에 뭐가 좋냐고 물었다. ‘아침잠이 많은 터라 아무래도 열한 시 반이 좋겠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열한 시 반이 좋겠다 그치? 라고 물어오는 환희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등록을 마치고 학원 앞 덮밥집에서 밥을 입에 욱여넣는 중이었다. 이게 뭘까? 싶었지만 우선 밥을 마저 먹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고 개강일이 다가왔다.


 개강일에 맞춰 간 학원에 환희는 없었다. 환희는 즉흥성이 넘치는 아이기에 오늘은 다른 걸 하고 싶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비어있는 자리를 찾았다. 열 명 남짓 들어갈 법한 강의실에는 코로나를 염두에 둔 듯 한 사람씩 띄어 앉아있었다. 그래서인지 학생 수가 많지 않음에도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만이 남아 있었다. 부담스러웠지만 어쩔 도리 없이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선생님은 이름이 뭐냐고 물어왔다. ‘stop yoon’이 잠깐 떠올랐지만 ‘지윤’이라고 대답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만 진행되었다. 한국어로 질문해도 영어로 대답하는 선생님을 보며 나는 내심 원어민교사라고 짐작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대화가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만 원이나 주고 산 교재를 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수업은 늘 선생님의 눈맞춤과 함께 ‘How are you?’로 시작했다. 수업을 막 듣기 시작할 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늘 얼버무렸는데, ‘I’m fine, thank you and you?’가 지독하게 각인되어있어 다른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진부한 대답을 하고 싶지는 않아 겨우 내뱉은 대답은 ‘good...’이었다. 

 이때부터 ‘good’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내 기분은 ‘good’ 하지 않은데 나는 왜 자꾸 ‘good’이라고 말하게 되는가. 지금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배워보겠다고 학생으로 앉아있는 이곳에서까지 내 기분을 가짜로 대답해야 하나? 이상한 것에 꽂혀 급발진해버린 나는 ‘good’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good’이라는 대답만 내뱉게 되는 나에 대해 고찰했다. 무던한 것을 미덕이라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고, 하물며 외국어로 말하는 일에는 서투르다 못해 불가능했다. 게다가 돈은 없고 시간만 많은 백수라는 불안정한 지위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딱딱한 환경 속에서 나는 고작 ‘how are you’라는 말에 정신적 위기를 느끼는 백수로 성장한 것이다. 뭐 하나라도 잘하고 싶은데 영어도 못 하고 자기 기분도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니. 이거 이대로 괜찮은건가 하는 고민 끝에 좀 모나 보일지라도 내 기분을 말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름대로 대단한 결심이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그럴 때면 다시 마주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곤 했다.


 다음 수업에서 또다시 ‘how are you’를 마주했을 때 나는 ‘tired’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how are you’의 바턴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세라 대뜸 ‘because...’를 붙였다. 선생님은 인내심 있게 눈을 마주하며 내 말을 기다려주셨고, 나는 칠 년 전의 영어 공부 기억을 더듬어가며 단어와 단어를 조합해서 대답했다. 


“Because... today I’ll go coffee. Because i’m work in coffee”

“Wow! Are you a barista?”

“Umm... no I work just middle time”

“Oh, You are part-timer!”

“Ah, Yes, yes, yes!”


 선생님은 손쉽게 ‘tired’에서 내 수입원까지 파악해냈다. 문법 따위는 개나 줘버린 어설픈 대답과 필사적인 표정만으로도 선생님은 유연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 식으로 더듬더듬 선생님과 카페에서 어떤 음악을 트는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 했다. 물론 내가 한 것은 선생님의 질문에 ‘oh, k-pop!’이라고 대답한 게 전부였지만.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있으면 한 단어라도 더 말하고 싶어졌다. 단어로 얼기설기 엮인 문장을 내뱉으면 선생님은 정확한 표현을 찾아 완벽한 문장으로 바꿔주셨다. 선생님은 다섯 남짓한 학생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질문을 하고, 모두의 일상을 궁금해했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줄 아는 일도 딱히 없는 나는 어느새 카페에서 일하고, 추리소설을 좋아하며, 시 쓰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수업은 주로 일상적인 주제로 이루어졌다. 어떤 날은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또 어떤 날은 <결코 될 수 없지만 하고 싶은 직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성의 있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나는 아는 단어를 총동원하거나, 휴대폰으로 단어를 검색했다. <Are you morning person or night owls?>가 주제인 날 역시 선생님은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맞춰가며 질문을 했다. 나는 문 쪽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있었기에 주로 초반에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의 질문에 잠깐의 고민도 없이 ‘night owls’를 외치고 또 ‘because’부터 허겁지겁 내뱉었다. 기껏 야심 차게 because를 내뱉고 나서 이유를 생각해보자니 딱히 이유는 없어서 한국에서 가장 익숙할법한 부사를 붙여 대답했다.


“I really really like sleeping”

“Oh, You are sleeping beauty! 라푼젤!”


 선생님의 대답을 들은 나는 ‘beauty’에 꽂혀버렸다. 우선 어색한 미소로 ‘thank you’라고 대답은 했지만, 미녀라는 단어는 맥락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다. 내가 예쁜 것과 잠을 많이 자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라푼젤이라니. 라푼젤이 잠을 많이 자던가? (사실 라푼젤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민 끝에 나는 적당히 잠자는 숲속의 공주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하, 내가 좀... 예쁘긴 하지. 그렇다고 이 타이밍에 beauty라니. 선생님은 언제부터 나를 예쁘다고 생각했을까? 마스크를 써서 하관은 보이지도 않을 텐데, 참. 평생 게으르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beauty의 타격은 강력했다. 90분의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대낮부터 다시 침대에 누워서도 라푼젤이 된 기분이었다. 쓰레기가 쌓여있는 방에서 잠만 자는 내가 사실은 sleeping beauty였다니. 음, sleeping beauty는 이만 잠에 들겠어.


 버킷리스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날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선생님은 같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물어보셨고, 그날따라 어쩐지 내게는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마지막까지 내게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두 달간의 수업 동안 얻은 자신감은 순식간에 초라해졌다. 선생님은 나를 제외한 네 명의 학생에게 모두 질문을 한 뒤, 드디어 내 눈을 바라보셨다.


“Jiyoon, Last, but not least, how about you?”

(마지막으로, 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소중한 지윤, 넌 어때?)


소, 뭐? 소중하다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질문을 지금 내게 하신 건가? 그런데 또 오해하지 않게 ‘소중한’이라는 말까지 붙여서? 나는 그 말에 또 꽂혀버렸다. 역시 선생님도 나와 대화하는 게 즐거운거야. 하긴, 내 일상이 좀 다이나믹하긴 해. 그러니 내가 피곤할 만도 하지. 그래, 마지막이라고 덜 소중하란 법 있나? 난 잊혀진 게 아니라고. 자격지심과 자의식 과잉의 환장의 콜라보로 수업 시간에 들은 많은 문장 중 마음에 드는 문장만 기억했다. 그리고 또 쓰레기로 둘러싸인 아늑한 침대에 누워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었다. 결국 외워버릴 때까지. 

 그래, 나는 마지막이지만 여전히 소중해.


 곱씹다 못해 외워버린 문장들은 일상 곳곳에 적용되곤 했다. 이를테면 서류 불합격을 받으면서도 그래, 난 last but not least 한 사람이니 끝끝내 합격하게 되겠지, 하며 초조함을 지워버렸다. 늦잠을 자게 되는 날도 그래, sleeping beauty가 이 정도 늦잠은 잘 수도 있지, 미모를 유지하는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 하며 핀트나간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타인에게 말하는 일은 없었지만 혼자 합리화하며 키득거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자아도취에 빠진 백수는 학원 가기 전날이면 알람을 열 개씩 맞춰두고 잠을 잤다. 라푼젤이 씻지 않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씻고 성심성의껏 옷을 골랐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향수를 뿌렸고, ‘how are you’ 에 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모르는 것은 불법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틈날 때마다 서점에 가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무작정 꺼내든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는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한 탓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만 읽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다 보니 어느새 사건의 전말을 다 알게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어버리게 만드는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감탄하며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다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응당 추리 소설 읽기가 취미인 사람이라면 영화도 놓칠 수 없기에 영화를 결제했다.

 추리 소설을 한 권 읽었으니 또 어떤 책들이 출간됐는지 볼까 하는 마음으로 서점을 둘러보다가 고전 문학을 모아둔 책장 앞을 서성이는 나를 발견했다. 언젠가 고전문학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난 돈은 없어도 시간은 넘치는 백수고, 책을 살 순 없지만 읽는 건 무료니까. 책장을 살펴보던 중 환희의 집에서 얼핏 본 <<시계태엽 오렌지>> 를 발견하고 꺼내 들었다. 두꺼웠지만 술술 읽혔다. 책을 읽다가 집에 가고 싶어질 때면 페이지를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고 나왔다. 집에 가도 뒷이야기가 궁금해 책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오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다음 날 눈 뜨기 무섭게 서점에 가서 마저 읽었다. 가끔 일하는 카페 사장님이 택시비로 쓰라며 만 원을 주시면 퇴근과 동시에 서점에 달려가서 책을 샀다. 서점에 가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내가 비단 추리소설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나면서 무감각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시를 읽고 쓰는 것을 취미라고 한 이유는 어학원에 다니던 중 환희의 권유로 시 스터디도 참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 스터디는 멘토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6주의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나면 소액의 지원금이 나온다. 한 푼이 아까운 백수에게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권유였다. 소액의 지원금을 기대하고 참여하기 시작한 시 스터디의 멘토는 환희였다. 세상에나. 매주 진행되는 시 스터디 시간마다 환희에게 언제쯤 어학원에 출석할 거냐는 질문을 꾸준히 했는데, 환희는 그때마다 다양한 핑계를 대며 능청스럽게 대답을 피하곤 했다. 문예창작학부생인 환희는 영어에는 관심이 없지만, 시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열정적인 멘토의 진심에 나는 동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를 쓰는 일은 내게 어떤 감정을 감당하게 했다. 무감각의 아래에서 넘실거리던 우울과 자기혐오는 시를 쓰다 보면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밀려오는 감정들에 숨이 막히는 순간이 오면 시를 썼다. 감정을 압축시켜서 문장들로 내뱉고 나면 성취감이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생산적인 무언가를 했다는 성취감. 마냥 그 순간에 갇혀 있을 이유도 없었다. 집 근처 서점에 가면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했고, 시 스터디를 하며 내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고 나면 후련했다. 

 그즈음에 나는 내가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 같다.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감각의 상태였다. 하고 싶은 일이 없고,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타고난 자의식 과잉은 건강하지 않은 나의 상태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혐오했다.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말을 아꼈다. 그런데 어학원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말 하는 것으로 나를 판단하기 마련이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제법 멀쩡한 인간으로 보일 수 있는 단어만 내뱉었더니 선생님은 그럴듯한 문장으로 만들어주셨다. 그럴듯한 문장으로 만들어진 나는 열심히 사는 인간이 되어있었고, 다채로운 일상을 사는,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수업의 마지막 날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You’re life is good topic!”


 내 삶이 좋은 주제라니. 자의식과잉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던 자기애가 절정을 찍는 순간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선생님의 문장을 곱씹으며 잠에 들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 문장을 들은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GOOD TOPIC, GOOOOOOOOOD TOPIC. 내 삶이 GOOD TOPIC이라니!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돌멩이들이 주체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굴러다녔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5평 남짓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GOOD TOPIC을 가진 삶을 사는 내가 쓰레기 소굴에서 살 순 없지. 깨끗하게 씻고 나와서 쌓여있다 못해 곰팡이가 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큰 종이 가방을 꺼내서 분리수거를 했다. 분리수거까지 끝내고 나니 씻고 나온 게 무색할 만큼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멈추지 않고 쌓여있는 택배 중 환희가 선물해준 조립형 행거 상자를 뜯었다. 설명서를 읽으면서 천천히 행거 조립을 했다. 몇 번의 재조립 끝에 행거를 완성해서 침대 옆에 세웠다. 의자 위에 쌓아둔 옷을 하나씩 옷걸이에 입혀 새 행거에 걸고, 돌돌이를 굴리면서 구석구석에 흩어져있는 머리카락을 수거했다. 

 그리고 침대에 다시 누워서 되뇌었다. “My life is GOOD TOPIC.”


+


 참, 선생님은 한국인이셨고 환희는 마지막 날까지 수업에 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찾아보니, sleeping beauty는 잠꾸러기라는 뜻의 명사라고 한다. 참고로 sleeping beauty syndrome은 잠자는 공주 신드롬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로 수면 불균형과 폭식을 초래하는 뇌 장애를 의미한다. 뜻을 알고 나서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어쨌든 라푼젤이라는 말도 덧붙이셨으니 내가 미녀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good topic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는 Last, but not least sleeping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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