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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ㅠㄴ Nov 10. 2022

Seoul Dream


 서울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집값과 대출금리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투덜대는 내게 엄마가 물어왔다. 대출이자납입일이 갱신될 때마다 더불어 갱신되는 금리 안내를 받을 때면 ‘응, 이러다 대구 내려가는거지 뭐’ 라고 자조적으로 내뱉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될 대로 되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일을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곤 한다. 본가가 서울 혹은 경기도이기에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선택지를 ‘실패를 염두에 둔 가능성’으로 여긴다. 고향 친구들은 내가 대구에 있지 않는 것에 대해 가족과 관련한 내밀한 이유가 있다고 짐작한다.

 나의 입장을 말해보자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을 만큼 당연히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서울에서 살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방식이겠지만 내게는 응당 그래야만 하는 ‘옳은 일’ 이라고 여겨졌다. 


 스무 살에 집 근처의 지방으로 대학을 진학하게 되면서 독립을 시작했다. 기숙사에 불과했지만 가족 구성원과 함께 하루의 끝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질은 크게 달라졌다. 매일 해가 질 때면 하루가 별 탈 없이 끝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는 삶이 존재한다니. 혼자 사는 삶의 안정감을 겪은 나는 “가족과는 함께 사는 거 아니다” 라는 문장을 스스로에게 주입시켰다. 이따금씩 주말에 본가에 가게 되면 가족들은 유례없는 애틋한 태도로 대해주었고, 그런 주말을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또 다시 “가족과는 함께 사는 거 아니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진리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스무 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일 년을 보낸 나는 대학을 자퇴하고 다른 학과의 입시를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대구에 있는 본가로 들어갔다. 본가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일 년의 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재능이 있다. 이후에 진학한 대학을 이 년 다니고 또 자퇴를 했고, 내 나이 27살이 되던 해 드디어 경기도에 위치한 대학을 졸업함으로서 공인된 백수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순간에 “가족과는 함께 사는 거 아니다”라는 문장을 새겼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세뇌의 힘과 더불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재능이 더해져 이유라던가 논리의 알고리즘은 새까맣게 잊어버린채 “아무튼 가족과는 함께 사는 게 아니다”라는 결론만 남게 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엄마에게서 저런 질문이 나오는 즉시 나는 어처구니없어 해야 한다. 내가 고향에 있지 않으려는 이유는 가족과 함께 살지 않기 위해서이고, 엄마 역시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기에. 당신들이 내게 준 불안정함이 지금까지도 내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쏟아붓고, 그런 내게 ‘감히’ 대구에서 살아갈 것을 권유하느냐고 분노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아주 당혹스러운 형태의 문장이었다.


“어…. 혹시 내가 잘 될까봐…

혹시 내가 잘 됐는데 서울에 없으면 안되니까…”


 설사 가족 탓이 아니더라도, 일자리가 없다, 와 같은 사실에 기반한 이유를 두고 기껏 내뱉은 말이 이런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문장이라니. 나는 스스로를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염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부모님 앞에서는 더더욱 그런 사람인 양 굴었는데 그런 내가 사실은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꿈꾸는 청년이었다니. 취준생으로 한 해를 보내면서 내가 맛 본 감정은 좌절과 좌절, 그리고 좌절이었기에 올 한 해는 기대를 내려놓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내려놓은 듯해 보이는 태도만 취하고 있을 뿐 실제로 내려놓은 것은 없었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던 스무 살의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하던 스무 살의 나와 아주 많이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했다. 여전히 비관적이면서도 미래를 기대하고, 우울해하면서도 끝내 맞이할 희망을 포기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적이면서 안심이 되었다. 이 무슨 기묘한 감정들의 조합이란 말인가.


 그러나 한 편으로 이러한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미래를 내려놓으면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과 슬펐던 기억, 그 어떤 것도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지는 못 한다.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줄지언정 현재의 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미래에서 나온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막막하기 그지없어 죄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실은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은 현재의 내 모습보다도 명확해서 결국 포기할 수 없는 희망으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의 내게 만족하지 못 할수록 미래에 바라는 내 모습은 명확해진다.

 주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는 집에서 사는 나. 캡슐이 아닌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주는 기계를 주방 한켠에 두고도 도마질을 하기에 문제없는 크기의 주방을 가진 집에서 사는 나. 친구의 생일이 다가와도 초조해 하며 통장 잔고를 확인하지 않는 나. 내게 꼭 맞는 직장을 찾아내어 하루 아침에 해고당할 걱정을 하지 않는 나. 야근을 하면 야근수당을 받고, 회사 돈으로 영어 학원 수강료를 지급하는 삶.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외국의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는 삶. 과거에 휘둘리지 않는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나. 잊은 기억을 떠올리고 용서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된 나.


 이런 꿈을 떠올리다보면 마음이 부풀고, 부푸는 마음의 크기만큼 초라해진다. 희망을 버리지 못 하는 내 모습이 허세를 버리지 못 한 것 같아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는 내게 미래는 포기의 영역이 되지 못 하기에 또 다시 잘 될 거라는 말을 읊조린다. 별 것 없는 나의 모습보다도 절망적인 사실은 어쩌면 앞으로도 별 것 없는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삶이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면 또 더 나은 삶을 사는 나의 모습을 꿈꾸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망과 기대 사이의 간극에서 포기하지 못 하는 내 모습은 나를 힘들게 하고 또 살아가게 만든다. 


 의사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냥 우울의 상태에 머물고 싶다고. 자꾸 희망을 가지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행복과 좌절감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 사이를 오가는 일이 우울함에 머무는 것 보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못 하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지친다. 어쩌면 살아가는 일이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실을 가장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또 다시,

절망의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끝내 도착할 좋은 날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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