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 18일 잔잔한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8시경. 내가 태어났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초음파 사진을 보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가 롱다리라고 말해줬고 엄마는 그 말에 힘입어 나를 슈퍼모델로 키울 거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셨다.
하지만 머리 묶는 것을 질색팔색하며 싫어하고 뛰어다니기 좋아해 치마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나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되기보다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잡초 근성으로 자라나 모델이 되기에 이미 내 몸에는 수많은 영광의 상처와 흉터로 뒤범벅되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늘 말한다.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다고.
나는 색각 이상이 있어 옷을 입을 때 엄마한테 곧잘 무슨 색인지 물어보는데 우리 엄마는 그럴 때마다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내게 말해준다.
벽돌색
쥐색이네
풀색이랑 바다색
비둘기색
우리 엄마의 정겨운 이 표현이. 구석구석을 살피는 섬세한 이 시선이 참 좋다.
작년 생일, 엄마한테 물어봤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종종 물어보긴 했지만 부모님은 잘 기억을 못 하셨다.
그런데 이번엔 엄마가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씀하셨다.
아기가 거꾸로 돌아있어서 난산이었다고.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말을 잘 안 들었나 보다.
요즘 주변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엄마가 걸어온 발자취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일이 되면 생일 당사자와 더불어 그들의 엄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다.
만약 첫째라면, 그들의 부모도 그 첫째의 생일이 곧 부모가 된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평소 표현을 잘하지 않아 부끄럽지만 생일만큼은 엄마에게 말한다.
나 낳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무뚝뚝해서 부러져버릴 것 같은 몹쓸 딸내미는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꽁꽁 숨겨왔던 말을 꺼내보려 노력한다. 다음 해 생일, 그리고 그 다다음 해, 다다다다다음 해는 더 표현이 풍성해지는 딸이 될 수 있기를, 그러니 엄마도 더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함께 하시기를 생일 소원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