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먼저 생각하는 거? 그게 잘 안 돼
"너부터 챙겨."
그 말을 들은 내가 하는 말은 항상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잘 안 되네."
나는 첫째로 태어났다. 아래로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내 동생이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내가 가장 먼저 태어났다면 난 맏이가 된다. 친가에 비해 교류가 활발한 외가에서도 자식들 중엔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 유치원 때를 제외하곤 초등학생 때부터 맏이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딱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 대신 동생을 먼저 챙기고, 가족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
맏이로서의 삶에는 항상 어깨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것이 얹어있다. 떼어낼래도 떼어낼 수 없는, 일종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못하는 공부도 쉽게 놓지 못한 채 끝까지 억지로 매달려야 했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다.
설거지, 인형탈, 편의점, 음식점 서빙, 키즈파크 매점, 키즈파크 안전요원, 과외, 전단지, 도서관 사서, 연어잡이, 부품조립 부업 등 남들이 여행 가고 즐기는 사이 나는 쉴 틈 없이 일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살아온 흔적 같았기에 뿌듯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에 대해 성찰할 시간과 나를 위해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과거의 기억은 당연하게도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쉬어본 경험이 없기에 왠지 모르게 현재의 삶이 더 버겁고 지치게 느껴진다. 가족을 위했던 삶이, 내가 첫째로서 추구했던 삶이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 스스로의 선택이었는지 지금 와선 잘 모르겠다. 당시엔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첫째로서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첫째들은 공감하는 게 있을 것인데, 내 주변에 첫째들과 대화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내 위에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어."
첫째는 기댈 곳이 없다. 어리광 피울 곳이 없다. 부모님에게 기대고 어리광 피우면 되지 않나?라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지만 '꼭 강해져야 하는'첫째의 입장에선 자신의 힘듦을 부모에게 쉽게 드러낼 수 없다. 사람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난 그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린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곤 혼자서 마음을 삭히고, 울고, 힘들어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기쁨이 나의 기쁨임과 동시에 힘듦이었다. 이 상태에서 가족을 덜 생각하고 나를 우선으로 챙기면 행복하지만 불안했다. 결국은 행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가족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수년간의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성공하는 것'이었다. 내가 금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여유로워지면 가족한테 충분히 할 만큼 하고도 나를 챙길 수 있는 것들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성공하려고 한다. 이것도 사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나를 위한 것인가? 생각해 보면 애매하긴 하다. 그래도 이게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이다.
다른 첫째, 맏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부디 나처럼 너무 가족에게 얽매여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챙기는 것을 등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하게도 가족은 내가 먼저 행복하길 바란다.
"너무 맏이로서의 부담감을 준 것 같아 미안해."
위에서 말한 부모님 앞에서 펑펑 울었던 몇 안 되던 때이다. 그때 중 하루, 어머니가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어머니는 3녀 1남의 장녀시다. 맏이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그만큼 어머니는 나에게 맏이로서의 부담감을 전혀 주지 않으셨다. 어떤 일이든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힘든 일은 도맡아 하시려고 했다. 그런 어머니가 나에게 저런 말을 하셨다는 사실에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했던 행동들이 결국 어머니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일을 만든 것이다.
가족의 행복은 당연히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그 가족 안에는 나 자신도 들어간다는 걸 꼭 명심하자. 그리고 가족들은 맏이의 희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가족으로서 맏이든, 막내든 다 같이 행복하길 소망한다.
이 글을 본 모든 첫째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감히 한마디 보태본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