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등

이제야, 이제서야 어머니의 등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by 비나리

그때가 아마 2015년쯤 벚꽃이 만개하던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다니다가 상병 말 때쯤 휴가를 나왔던 것 같다. 그때도 어김없이 소중한 휴가를 만끽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핸드폰을 보다가 결국 새벽에 잠들었다. 분명 눈을 잠깐 감은 것 같은데 눈부신 햇빛이 눈꺼풀 자꾸 때렸다. 언제나처럼 계속 저항하며 잠을 이어가려 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눈을 떴다. 기지개를 쭉 펴고 짧지만 부스스해진 머리를 한 손으로 박박 긁었다. 아직 덜 떠진 눈으로 방문을 열었다. 방문 밖에는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커진 눈 안에는 거실의 풍경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오로지 어머니의 등이 보였다. 난 그 상태로 몸이 굳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몇 초나 흘렀을까,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하..."


내 몸속인지 아니면 내 마음속 어딘가 아주 깊은 곳에서 빠져나온 소리였다. 그리고 얼마 뒤 뜨거운 것이 흘렀다. 그때 흘러내린 건 눈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님에 대한 감사함, 사랑, 죄송함, 존경심, 후회 등 온갖 것들이었다. 바닷물이 짠 이유는 여러 곳에서 흘러들어온 수많은 것들이 녹아들어서이다. 눈물이 짠 이유도 말과 단어로 표현지 못하는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당시 혼자 방에서 꺽꺽거리며 소리를 안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 궁금했다. 울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가 맨 처음 어머니의 뱃속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이 만약 있다면, 그때처럼 울고 싶었다.


어머니와 20년 조금 너머를 살며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쌓여있었던 것 같다. 너무나 소중한 것들인데 나는 그저 쌓아두기만 할 뿐 다시 꺼내보지도, 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꺼내봐도 소중함을 잘 모를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냥 방치해 둔 것이다. 짱구네집 벽장이 떠오른다. 이것저것 넣어놨던 사실을 잊은 채 조심성 없이 문을 열면 뭔지 모를 물건들이 쏟아진다. 막을 수 없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마구마구 쌓아놓기만 했던 감정들이 내가 막을 수 없게 계속 쏟아진다.


눈물을 닦고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좀 진정되자 방금 본 어머니의 등이 떠올랐다. 어릴 땐 어마 어머니의 등만 보고 자랐을 것이다. 내 울음소리, 눈물, 콧물, 생떼 등으로 어머니의 등은 많이 깎여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일부러 등을 보이며, 이 등이 나를 위해 깎여나간 등이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저 매일 아침마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셔서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시고 잘 다녀오라며 웃는 얼굴로 배웅해 주셨다. 어렸을 땐 봐도 뭔지 모를 어머니의 등이었고 나이가 들었을 땐 어머니의 등을 보지 못하고 앞모습만 봤다.


"잘 다녀와,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가고. 아침밥 한 숟갈이라도 먹고 가지..."


눈물이 겨우 멈췄나 싶었는데, 또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나서 막 울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만큼이나 울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얼마간 계속 울고 나서야 내가 운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딱 두 가지는 명백했다. 바로 감사함과 죄송함이었다. 가장 빛나고 예쁘셨을 시기에 많은 것을 희생하며 나를 길러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과 그 희생을 이제야 제대로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의 죄송함이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자주 울컥하곤 한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의 등을 자주 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게 되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관련된 인상 깊은 글이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여인인 어머니 먼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다른 여인을 사랑할 수 있겠냐 하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어머니를 많이 사랑한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해 주시는 만큼에 비하면 아주 조금일 테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진심을 다해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에게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못난 자식 어머니에게 사랑받은 힘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고 합니다. 어머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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