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 않고 내가 행복한 삶
"아저씨, 츄러스 하나만 주세요."
이 주문을 받은 나는 가장 얇은 츄러스를 꺼내어 설탕을 적게 묻혀주었다. 누가 봐도 20대인데 나에게 아저씨라고 하다니.
"삼촌, 츄러스 주세요."
그래, 적어도 삼촌이라고 하면 됐다. 나는 평범한 두께의 츄러스를 꺼내어 기분 좋게 설탕을 잔뜩 묻혀 손님에게 드렸다. 이렇듯 나는 나이에 민감했고, 특히 아저씨라는 소리에 민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저씨가 되고 싶어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저씨의 의미는 나이가 든 남성이 아니라 남의눈을 신경 쓰지 않는 좀 더 자유로운 남성을 말한다.
요즘 사회에선 비교가 팽배해지고 있다. 남이 나의 삶에 참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눈 감고 귀 닫고 사는 게 아닌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주류를 계속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SNS나 영상매체를 끊어보려고 했으나 너무 단절되면 공통된 대화거리가 없어서 이야기의 시작을 열기 힘들었다.
나는 유행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다. 아이돌도 많이 모르고, 유행 중인 메이커도 모른다. 남들이 다 본다는 영화도 안 보고, 다 먹는 음식도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난, 남의눈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나만을 위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도 모자랄 판에 남의 기준에 날 맞췄다.
물질적이거나 취미적인 것의 유행에는 민감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평균에는 유독 집착했다. 이 나이가 되면 연봉은 얼마여야 하고, 이런 일을 해야 하고, 돈은 얼마를 모아놔야 하며 등. 갖가지 사회적 기준에 나 자신을 옭아맸다.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내 무의식 속에는 항상 '그렇게 살아야 함.'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스로 만든 가시밭에 들어가 따갑다고 아프다고 말하지만 나오면 안 될 것 같았다. 계속 아프고 힘들어도 아프지 않을 때까지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나쁘니 더 노력해야 하고, 소득이 적으니 더 많이 뛰며 일해야 하고,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으니 더 몸으로 뛰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몸과 마음은 점점 약해져 갔다. 그러던 중 길가에서 호탕하게 웃고 계시는 어떤 아저씨를 봤다. 내가 평소에 보는 '아저씨'들은 자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옛날에는 아저씨를 보면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왜 저래."
이 말을 참 많이 사용한 것 같다. 눈에 팍팍 띄는 옷을 입고 다니거나, 등산 중 기이할 정도로 온몸을 쫙쫙 늘리며 스트레칭하거나, 맛있는 술이나 음식을 먹으면 필요이상의 감탄을 하는 모습 등을 볼 때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들이 부럽다.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들은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남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찾고 즐기는 아저씨들이 부러워졌다.
갑자기 남을 의식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삶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원래는 아저씨들의 삶을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나도 나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나의 롤 모델이 익명의 아저씨로 정해졌다.
나 자신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이게 난데
요즘 익명의 아저씨를 롤 모델로 삼아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사회를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추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 몸과 마음이 점점 건강해지는 걸 느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덧 난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자유를 주는데 자유롭지 않으면 얼마나 손해를 보는 삶일까. 빨리 자유로운 아저씨가 되고 싶다.
단, 나이는 먹기 싫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