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 좀 더 관대한 사회가 됐으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보통은 상사가 자주 하는 말이다.
"2번까지는 괜찮지만 3번부터는 안 돼."
"2번은 실수지만 3번부터는 고의야."
누가 이런 기준을 세워놨는지 모르겠다. 실수는 적을수록 좋은 게 맞다. 하지만 실수라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싶어도 실수할 때가 있다. 사람마다 일을 배우는 속도가 다르고 잘할 때까지 실수하는 횟수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른바 '쓰리아웃제'를 사회 전역에 많이 적용시키는 듯하다.
어떤 일을 맡았을 때 열심히 하다 보면 당연히 실수를 하는 일이 생긴다. 실수를 하고 그 일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실수 몇 번에 사람의 기를 완전히 죽이는 사람들이 있다. 실수를 하게 되면 당연히 피드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피드백이 실수에 대한 개선, 일하는 사람의 숙련도를 늘려주기 위해 미래를 생각하며 하는 말이 아닐 때가 많다. 그저 윽박지르고 무시하거나 심하면 인신공격까지 간다.
동식물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고 성장시키는 방법이 다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어떤 식으로 대우해 주냐에 따라 능력이 더 성장할 수도 있고, 저하될 수도 있다. 필자 같은 경우는 실수를 했을 때 윽박지르기보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더 잘 알아듣는 타입이다. 누구든 안 그러겠냐만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언성이 높아지거나 하면 더 긴장해서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몸이 굳고 비슷한 일을 맡았을 때 과도하게 긴장하게 된다. 그러면 실수는 줄겠지만 결과의 질이 좋지 못해 질 때가 많다.
필자는 스스로의 성격이 이래서 그런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실수하게 되면 그냥 차근차근 알려주는 편이다. 실수를 여러 번 하면 왜 실수를 여러 번 했는지 이유를 찾아서 같이 개선하려고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화내고 뭐라 한다고 고쳐질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실수를 수도 없이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수를 줄이려는 방안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에 수정하면 된다. 그리고 실수를 할 것 같으면 같이 도와서 하면 된다. 말이야 쉽지라고 할 것이다. 당연히 행동으로 하면 어렵다. 실수라는 게 작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큰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실수는 고의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누구든 얼마든지 생기기 마련이다. 계속 같이 노력할 뿐이다.
'쓰리아웃'이라는 규칙은 스포츠에서만 적용됐으면 한다. 규칙이 정해져 있는 일정 공간 안에서의 스포츠에서도 변수가 많은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 많은 변수를 이겨내고 일을 말끔하게 끝내는 것이 정말 잘하는 것이지, 실수를 저지른다고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을 바탕으로 더 일을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언제 실수를 했냐는 듯, 자신은 완벽하다는 듯 행세를 하며 실수한 사람을 꾸짖는다. 자신도 실수함을 인정하고 서로 보듬어가면서 챙겨주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실수에 좀 더 너그러워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