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는 생기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마음에 이불을 깔아주는 일

by 비나리

사회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다. 속도와 효율성이 극대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여유'라는 건 더 많이 생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유는 더 없어지고 변화의 속도에 쓸려가며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많다.


주변에서 나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조언해 줄 때가 많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유는 갖는 것이 아니라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달리면 달릴수록 정신없는 삶의 틈새에서 여유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몸과 마음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내 눈은 붉은색에서 점차 주홍색, 분홍색, 보라색 천천히 물드는 노을을 보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내 귀는 찰싹거리는 파도소리와 새들의 울음소리, 나뭇잎이 서로 비비는 소리를 듣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내 다리는 내가 딱 숨이 헐떡거릴 만큼만 뛸 수 있도록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내가 숨이 헐떡거려도 더 뛰라고 강요하고 있다.


당연히 나는 여유가 생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넘어졌다. 남들이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는 내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여유가 내 앞으로 와 잠시 쉬라고 손을 잡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유는 나에게 실루엣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여유가 없던 삶을 살던 중 한 친구가 나에게 인사동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때도 바빴던 때지만(스스로 바쁜 척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뭔가에 홀린 듯 친구를 따라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인사동까지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인사동에 도착한 친구와 나는 뭘 할지 계획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대단한 걸 하지도 않았다. 그냥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갔다. 서로 마음에 드는 음료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따뜻한 봄날이어서 카페 2층의 창은 활짝 열려있었다. 그 덕분에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멍하니 거리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목이 마르면 주문한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은 마른땅에 물을 적시듯 내 마음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속 그러고 있다가 천천히 한마디 꺼냈다.


"좋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작가를 꿈꾼다면 더 좋은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고, 그 표현이 적합한가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좋다는 말 보다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말은 내 입이 말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소리였다.

음료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마자, 명탐정 코난이 뭔가를 깨달았을 때 빛의 섬광이 머릿속을 가늘고 빠르게 통과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도 뭔가가 슉하고 지나갔다.


여유는 생기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구나


여유는 바쁜 삶의 틈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 틈 속에 있는 나에게 이불을 깔아주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내 마음에게 '이 순간은 쉬는 시간이야'하고 가르쳐 주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왜 사람들이 여유를 좀 '가져'라고 표현하는지 알았다. 여유는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의 의지로 갖는 것이고 만드는 것이다. 열심히만 사는 것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요즘은 내가 좀 지쳤다고 생각되면 일부러라도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혹시나 여유가 오길 기다리며 열심히 달리고만 있다면 꼭 제자리에 멈춰 서서 여유를 만들길 바란다. 마음의 병이 들게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에게 쉼을 처방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여유를 가져도 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가져도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너무나 소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쉴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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