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강렬했던, 하지만 지금은 너무 아련한
20대가 되고부터 지금까지 석양 보는 걸 참 좋아한다. 강원도가 고향이었기에 바닷가에서 보는 석양은 특히 더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수평선 위의 석양은 그 어느 것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련하게 빛난다. 힘차게 떠올라 지상으로 뜨거운 햇빛을 뿌려대던 태양은 이때만큼은 너무 약해진다. 지금은 서해안 쪽에 살고 있다. 직접 서쪽 바닷가로 지는 태양을 보러 가려면 꽤 먼 거리를 가야 하지만 그래도 매년 1~2번은 보는 것 같다. 서해에서 보는 해는 동쪽의 해보다 더 옅은 빛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엔 석양을 보면 아련하다. 아름답다. 예쁘다 등 감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석양 자체에 매료되었기에 석양과 닮은 무엇을 상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석양의 빛이 내 과거의 기억과 마음속 어딘가까지 쭉 뻗어 소중한 무언가에 닿았다. 그 약한 빛이 제일 강하게 내 추억을 건드렸다.
현재를 살아가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먼지만 쌓였던 내 추억의 서랍장이 하나하나 열렸다. 그 서랍장 안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던 건 과거의 젊었을 적 아버지였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도 많이 어리셨을 적에 나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같이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가기도 했고, 밤늦은 시간까지 축구공을 차며 놀았다. 가게를 하고 계셨음에도 최대한 시간을 내서 함께해 주셨다. 그때의 아버지는 빠르고 강했다. 그리고 무섭기도 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엄했다. 아버지의 화가 무서워 잘못을 하면 몸이 바로 굳었다. 핑계를 댈 용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매는 아팠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좀 오싹하다. 하지만 엄할 땐 엄하고 상냥할 땐 한없이 상냥한 아버지 덕에 난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다.
어느새 난 금방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까지 했다. 그렇게 내가 점점 커가는 동안 아버지는 점점 작아지고 약해졌다. 이젠 옛날만큼 달리시지 못했고, 옛날만큼 드시지 못했고, 옛날만큼 날 혼내지 못하신다. 같이 집 앞 호수를 한 바퀴 뛰었던 때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머리 꼭대기에 있는 태양처럼 아버지는 빛났었고 항상 위에 계셨다. 언제까지나 에너지를 잃지 않고 나를 목마 태워 주시고, 스쿠터와 차를 타고 어디든 데려다주실 것 같았고, 스타크래프트와 바둑을 하며 한 1승도 나에게 주지 않으실 것 같았다. 지금의 아버지는 그것들이 어려워졌지만 대신 낮은 높이에서 나와 친구처럼 잘 지내주신다. 강하게 내리쬐기보단 상냥하게 날 안아주듯 여전히 빛나주고 계신다.
정오의 태양보다 많이 약해진 저녁쯤의 태양은 그럼에도 아직 강하게 빛을 낸다. 하지만 그 빛이 너무 아련해서 강했던 과거를 자꾸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요즘은 계속 석양을 보면 아버지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