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운동 다녀올게" 아버지가 달라지기 시작한 그새벽

외할머니 장례식과 아버지 투병이 겹친 그 해, 우리 가족의 기록

아버지는 그렇게 판정 받으신 후, 표적 치료제 사용이 가능한지 검사를 시작했다. 여러 가지 치료제 중에 다행히 1가지 사용이 가능해서 오빠와 빠르게 결정했다. 다들 휴가를 써서 표적 치료제 시작 전에 아버지와 제주도 가족 여행을 다녀오자고 말이다.


여행을 예약해두고 얼마 안되어서 외할머니 컨디션이 많이 안좋아지셨고,

엄마는 할머니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여행을 포기하셨다.

다같이 가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할머니께서 결국 먼저 떠나셨고, 엄마는 그 자리를 지킴으로써 딸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셨다.


항공사와 리조트에 연락해 패널티 없이 여행을 취소했고, 외할머니 장례식을 다녀왔다.

장례식 후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제주도로 함께 떠났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30일 오후 03_54_55.png


조카 2명과 딸아이까지 3명의 손녀와 아들, 딸, 며느리, 사위까지 포함한 9명의 여행이었다.

대가족이 움직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식사도 잘하시고, 표정도 밝으셨다. 작가님을 섭외해 가족 사진도 남기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며 보냈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추억이 되었다.


여행 후, 처음에는 표적 치료제가 잘 맞아서 종양이 1/3로 줄어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 시기엔 아버지도 무척 신나하셨다.

하지만 3~4개월 후, 어느 날 새벽 "혼자 운동 다녀오겠다"며 평소 같지 않은 행동을 보이셨고,

그날 이후 모든 흐름이 바뀌었다.

겁이 난 엄마는 급히 전화를 주셨고,

다행히 그날이 오프였던 나는 서둘러 부모님 댁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다.


담당의는 나트륨 수치 저하로 인지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진 것으로 진단했다.

아버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날짜나 계절에 대한 인지도 없으시니 너무 다른 사람 같았다.

마치 아버지의 몸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될까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원에서 전해질 수치를 조정하면서 회복되신 이후로는 괜찮아지셔서

1주일 정도 경과를 살펴본 후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날마다 아버지의 상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고,

엄마는 매일매일이 두렵고 초조한 시간이었다.

매일 2-3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어떠신지...

드신 음식과 움직이신 양을 확인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그 시간을 엄마는 어떻게 견디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셨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는 과연 딸로서 충분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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