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이 후 가족이 나눠 맡은 돌봄의 기록
1개월 후 결국 뇌로 전이된 사실이 밝혀졌고,
종양도 다시 커지면서 표적 치료 효과가 사라졌다.
뇌 전이된 부분에 대한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지만,
단 2번의 시도 후 아버지는 모든 치료를 멈추게 되었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기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며, 결국 semi coma 상태로...
간호병동에서도 케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우리는 남은 시간을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아버지와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다.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친오빠는 매주 주말마다 내려와 아버지를 돌보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나는 주중 이틀을 맡았다.
남은 시간은 엄마가 지키셨다.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고,
체격이 크셨기에 나 혼자서 돌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때론 내 한계를 느끼며 눈물이 났지만, 그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떠난 후 '왜 더 곁에 있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로 평생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 나의 말에 오빠는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히 같이 해야지. 우리 아버지인데..."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바쁜 교직 생활 중에도 매주 주말을 아버지께 온전히 내어드린 오빠가 참 고마웠다.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와 시간을 보내셨다.
상태가 점점 악화되시면서 엄마가 더 힘들어보이셔서 오빠랑 상의 후,
서울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고 중환자 실로 이동 후... 가시기 1주일 전, 갑자기 상태가 무척 좋아지셨다.
마치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듯 말이다.
그날은 엄마, 오빠, 남편, 그리고 나 –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아버지를 뵌 날로,
지금도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는 결국 폐렴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만약 더 오랜 시간 고통 속에 계셨더라면 아버지도, 우리도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쉬운 작별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서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기고 가신 마지막 선물은,
바로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