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전날, 선크림 한 통으로 시작된 이야기
아이와 함께 떠나는 오사카 여행.
그런데 출발 전날, 예상치 못한 배틀이 또 시작됐다.
이번의 전쟁 아이템은… 블랙프라이데이 선크림.
불과 2주 전, 할인한다고 해서 두 개짜리 선크림을 사줬다.
그런데 이번엔 블프라며 또 다른 종류를 사달라는 딸.
“엄마, OO 선크림이 오늘 최저가야.
이건 진짜 필요해!”
“지금 있는 거 다 쓰고 얘기하자.
그리고 세일은 늘 또다른 세일로 이어지는 거야.
그 상술에 흔들릴 필요 없어.”
“아니, 그때 산 거랑 이건 완전 달라.”
“그것도 톤업이었잖아. 이제 그만.”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돌고 돌다 보니
결국 나도 감정이 올라와 버렸다.
안 해도 될 ‘라떼 시절’ 얘기까지 꺼내고 말았다. 나는 진짜 꼰대인가보다!!
그렇게 대화의 초점은 ‘선크림’이 아니라
내가 던진 말의 온도로 바뀌었다.
딸은 기분 나쁨을 표현했고,
나는 결국 쿨한 척 사과했다.
그런데 속으로는
‘정말… 이 상태에서 여행을 가도 되는 걸까?’
라는 고민이 한가득 밀려왔다.
그래서 짐도 안 싸고,
일한다고 노트북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밤 11시쯤,
남편과 딸이 번갈아 방을 기웃거렸다.
내 눈치를 보면서.
눈치빠른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둘이 한 판 했어?”
딸이 또 혼날까 봐
나는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아니야”라고 답했다.
잠시 후,
딸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엄마… 아까 선크림 때문에 짜증내서 미안해.”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며칠 전 남편이 한마디를 툭 던진게 기억났다.
“근데 당신 안 가면… 우리 미아 돼.”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딸이 미아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말 잘 통하고 일정 다 챙겨주는 비서가 필요한 거겠지.
호텔·항공권·스케줄까지 다 맞춰주는 그 ‘비서’ 역할.
내가 그 일을 내려놓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내 삶은 왜 퇴사 처리가 안 된 걸까.
그래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결국 함께 떠난다는 사실.
그게 이번 여행의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다툼도, 서운함도 있었지만
비행기 뜨는 순간엔
우리 셋의 얼굴에 같은 미소가 있었으면 한다.
이번 여행,
부디 괜찮길.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본다.
사춘기와 여행 사이, 엄마의 마음은 늘 미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