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과 스고이 사이, 우리 모녀의 리듬

교토, 우리 가족의 느린 하루

첫날 무리했는지 딸이 아침에 도통 일어나질 못했다.
그래서 그냥 더 자게 두었더니 10시를 훌쩍 넘겨 기상, 꽃단장 후
결국 11시 20분에야 호텔을 나설 수 있었다.

오늘 딸의 요구사항은
청수사, 기찻길, 마챠 파르페, 모찌모찌.
그중 기찻길은 시간이 부족해 아쉽지만 포기하고
가능한 것만 하기로 했다.

호텔 앞에서 케이한선을 타고 특급으로 이동하니
45분 만에 교토 도착.
배가 고파 규카츠 식당을 먼저 찾았는데…
gpt를 믿었다가 번번이 낚였던 전적 때문에
이번엔 네이버·구글을 동원하며 찾아갔다.

그런데 딸은
“언제까지 걷는 거야… 없어진 거 아냐…유명하다면서 왜 기다리는 사람도 안보여?”
징징 모드 ON.

이번 여행에서 확실하게 깨달은 하나...
아무것도 준비 안 한 사람은 조용히 있는 게 맞다!
솔직히 징징거림이 좀 힘들었다. 아… 진짜.

어찌저찌 도착한 규카츠 식당.
가격표를 보고 둘 다 눈이 잠시 커졌다.
1만원대부터 8만원대까지... 등급에 따른 가격차이

역시 딸은 우리 중에서 제일 비싼걸로 고름 --;
“헉… 가격은 사악한데 맛은 또 너무 있다…”
이런 상황...

소화도 시킬 겸 청수사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모찌 가게, 우렁찬 쇼를 하는 소리 시끄럽다. ㅋㅋ
딸기 하나 올라간 모찌가 만원…!
그걸 또 사서 먹더니
“냉동 딸기잖아… 이걸 만 원 주고 기다려 먹을 건 아니네.”
역시나 딸의 뒤늦은 후회.

청수사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그래도 우리는 어제부터 비를 기가 막히게 피하며
우산 없이 잘 다니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후 160년 된 마챠 파르페 맛집으로.
첫날 먹은 스시보다 더 비싼 파르페라니…
일본의 ‘스고이’는 이런 데서 나온다.
나와 보니 비가 왔었는지 바닥만 젖어 있었다.

다음은 딸의 강력한 요청, 케이북스를 찾아 덴덴타운으로... 원하던 아이템은 없어서 못샀다. 도쿄 케이북스에 파나봐... 이런다...
가챠 뽑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제발 마리오는 하지 말라”는 엄마 말을 또 안 듣고, 결과는… 못생긴 버섯 두 개 세트. 색깔 다른게 어디냐며... 은색, 금색으로 ㅋㅋ
또 후회. 또 리셋.
그리고 이번엔 엄마가 뽑아줘! 모드.

마이멜로디와 시나모롤 귀여운 걸로 당첨 역시 엄마는 싸압 가능 ㅎㅎ

타쿠마 우동을 가려 했으나
3시에 영업 종료 현실인가?
결국 난바시티까지 걸어가 다른 우동집에 갔다.
근데 또 추천 메뉴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시켰다가
맛없는 냉우동 당첨.
결국 엄마아빠 메뉴 먹고 우리는 딸내미 걸로 먹고 하루 마무리.
하… 피곤하다.

숙소로 이동해 사우나로 직행.
31층 고층에 노천탕까지 있는 사우나라
이 호텔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였는데,
첫날 안 간 걸 뒤늦게 후회했다.
하루 종일 시달린 다리가 그제야 풀렸다.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고 나오니,
종일 쌓였던 피로가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31층 창밖으로 번지는 야경을 보며
오늘 하루를 조용히 떠올렸다.

짧게 다녀온 교토였지만,
걷고, 먹고, 다시 걷는 그 사이사이에
사춘기 딸과의 거리도
조금은 다시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라는 게 결국
대단한 무언가를 보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겪고 웃고 버티는 순간들이
천천히 쌓여가는 과정이겠지.

내일은 또 어떤 변수와 깨달음이 올까.
그렇다 해도 괜찮다.
오늘만큼은 충분히 잘 보낸 하루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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