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재촉을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떠오른 질문 하나

요 며칠, 내게는 평화가 찾아왔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내가 어떤 기준으로 가족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아이에게 더 이상 재촉하며 숙제를 했느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
가끔 내가 얼굴을 비추면 부담스러운 듯 숙제를 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아마 아직은 불안하지 않으니 그러겠지, 하고 가볍게 넘겨본다.

물론 이 마음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요즘 읽고 있는 나태주 선생님의 『나만 아는 풀꽃 향기』가
이 마음을 조금 더 붙들어 주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언제나 딸을 믿고, 사랑과 예쁨을 아끼지 않았던 그 따뜻한 마음.
나는 그 마음이 참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민애 교수님의 말이 오래 남는다.
힘들어하던 엄마도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것을 볼 때면 기뻐했기에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단다.

어린 나이에 그런 마음을 품고 가족을 생각했다는 사실이
짠하면서도,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민애 교수님과 동갑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나도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책상에서 공부하다 잠에 겨워 쿵 하고 떨어질 만큼은 아니었다. ㅎㅎㅎ

그럼에도 나는 아이에게 너무 큰 것을 요구하고 있었음을, 이제서야 자각한다.

부족한 나였는데도 엄마는 늘 말했다.
“너 같은 딸은 마흔 명도 키울 수 있어.”

그 말에는 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었을까.

나는 딸에게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마음에 걸린다.

엄마는 지금도 말한다.
유학을 반대했던 것이 미안하다고.
이미 지나간 일이고, 모두 내 선택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이었을까.

얼마 전 엄마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들은 자상한데, 딸은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것 같다고.

웃으며 넘겼지만,
나는 오빠보다 조금 더 냉정한 편이다.
그리고 그 냉정함이, 어쩌면 딸에게도 버거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나를 바라보던 그 마음을
이제서야 조금 이해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껴져도
그저 “너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마음.


나는 아직도 답을 찾는 중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아이를 믿는다는 건
앞서가서 끌어당기는 일이 아니라
한 발 뒤에서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
딸아이가 나를 떠올릴 때 차가운 엄마가 아니라
조용히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이는 늘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