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다른 세계를 여행했다
마지막 날을 어딘가 애매하게 맞은 우리는
아침 공기부터 조금 어색했어.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 너는 9시쯤 일어났고,
나는 빵과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지.
네가 씻는 동안 나는 늘 하던 대로 듀오링고를 하고, 글을 쓰며,
지인과 톡을 주고받았어.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의 세계에 잠깐씩 들어가 있던 시간이었다.
씻고 나온 너는 도쿄에서 엔하이픈 전시회가 열린다는 공지를 봤다며
거기에 가고 싶다고 말했어.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엔하이픈이었어.
마지막 날까지 아이돌이라니...
사실 나는 조금 실망했어.
마지막 날은 정리도 하고,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었거든.
여행의 끝은 늘 정돈된 마음이길 바라는 사람이니까.
유심을 바꿔 끼우다보니 카드 결제도 안 되고,
결국 시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온 피곤한 베프에게 연락해
표 예매를 부탁했어.
위버스 아이디까지 있는 신세대 이모라니.
이쯤 되면 나는 구시대 사람 같게 느껴졌지만 나는 원래 옛날 사람이니까...
우여곡절 끝에 티켓을 예매하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에 사는 사람이 아니니
로손에 가서 티켓 발권기 LOPPI로 실물을 출력해야 한단다.
아이돌을 좋아해 본 적 없는 나는
아는 정보도, 감도, 요령도 하나 없었다.
결국 여러 로손을 돌며 LOPPI가 있는 곳을 찾아 발권을 마쳤다.
그런데 또 전시장 앞에서
“2시 넘어서 다시 오세요.”
기다리고, 걷고, 다시 기다리고.
나이 든 엄마의 체력은 점점 고갈되어 갔다.
시간이 되어 전시장에 들어갔지만
솔직히 나는 큰 감흥이 없었어.
아까운 돈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올라와 속이 조금 쓰렸지.
그래도 끝까지 함께 관람했어.
소품을 사고 싶어 하는 너에게
“딱 1개.”
가챠도 “딱 1번.”
원하는 게 나오지 않았지만
너는 그 결과도 또 하나의 추억처럼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전시가 끝나고 우리는 급히 숙소로 돌아왔어.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야 했으니까.
오는 길에 돈키호테에 들러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사고,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며
공항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자고 말했어.
너에게는 서프라이즈였지만
돌아가는 저녁 비행기는 비즈니스로 예약해두었거든.
장거리는 못 태워주지만 단거리는,
남아 있던 마일리지로 가능한 작은 사치였다.
우리 집에서 비즈니스를 제일 많이 타본 사람은 너야.
엄마와 아빠는 딱 한 번씩뿐인데.
지난번엔 나는 이코노미였고,
너와 아빠만 비즈니스였지.
그런데 구아바 주스도 안 마셨다니.
그 얘길 듣고 얼마나 허탈했는지.
공항으로 가는 길,
비즈니스로 간다는 사실에 들뜬 너의 표정을 보며
나는 결국 웃고 말았어.
아이의 기쁨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분명하다는 걸 느꼈지.
공항 편의점에서 네가 좋아하는 우동을 네 개 사고,
체크인을 하니 비즈니스라 수속도 빨랐어.
면세점에 들러 니가 먹고 싶다던 도쿄 바나나와
부탁받은 로이스 초콜릿을 샀어.
ANA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여유를 누리다 비행기에 탑승했어.
짧은 비행이라 비즈니스를 만끽하기엔 아쉬웠지만
그래도 편안한 마무리였어.
밤 10시가 넘어 도착하니 아빠가 김포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어.
그런데 입국장에 또 여학생들이 가득했어.
또 다른 아이돌이 곧 입국할 예정이었나봐.
너는 기다려서 보고 가고 싶어 했지만
체력이 바닥 난 나는 단호했어.
우리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지.
2박 3일 여행의 끝.
아쉬움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다음 여행은 각자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도시를 여행했지만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아이돌을 따라가고,
나는 조용한 카페와 정리된 하루를 원한다.
그래도
공항으로 가던 길
설렘으로 빛나던 네 얼굴은
이 여행을 통째로 지우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다음 여행을 정말 안 가게 될까?
아니면 또다시
네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따라
내가 따라가게 될까?
아직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