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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20. 2016

시간이 필요해.

강아지님과 산책하기

 복덩이가 우리 집으로 온건 내가 수능이 끝나고 그러니까 6년 전쯤이다. 대학교에 가야 하는데 아들 없이 적적해하실 부모님 걱정에 복덩이를 데려왔다. 신기하게도 복덩이가 우리 집으로 오고 난 뒤부터 우리 집이 잘 풀렸다. 원하던 대학교에 들어갔고 집안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하면서 복덩이를 볼 시간이 없어졌다. 그래도 나를 잊지 않고 나를 볼 때마다 달려와서 뽀뽀를 해준다. 내가 없는 집안에 빈자리를 잘 채워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

 


정말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서 덩이와 산책할 시간이 생겨서 집 앞에 호수로 나갔다. 덩이는 대소변을 실내에서 보지 않고 밖에 나가야 보기 때문에 부모님이 하루에 한 번은 산책을 시킨다. 그래서 산책은 강아지 중에 프로급이다. 그런데 산책을 시키는 주인마다 코스가 다르다. 아버지와 함께 나가면 오프로드를 즐기고 어머니와 함께 나가면 호숫가에서 명상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오랜만에 나와 산책을 나가던 덩이는 자기 맘대로 코스를 정했고 나는 그냥 따라갔다. 나와 다니던 길을 까먹고 엉뚱한 길로만 갔다. 그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맡고 싶은 냄새를 마음껏 맡으며(강아지한테 산책 중 냄새를 맡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냥 맡게 두지 않고 질질 끌고 빨리 오라고 재촉하면 산책의 의미가 없어진다.)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덩이를 그냥 두고만 봤다. 같이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둘이 같이 보낸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 포토타임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강아지와 나 사이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된 초년생이라 일을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


거금 들여서 산 주식은 오를 시간이 필요하다.


복싱을 배운지 얼마 안 됬기 때문에 라이트훅을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


돈을 번지 얼마 안 됬기 때문에 모을 시간이 필요하다.


갓 태어난 조카에게 삼촌 소리를 듣고 싶지만 말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배가 고프긴 하지만 그래도 요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맞춰갈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들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조바심이 나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성격 급한 한국인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국영수만 배우다가 갑자기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라고 재촉하고, 언수외탐을 공부하다가 수많은 대학과 수많은 학과 중에 어디를 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재촉을 받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쪽은 취업이 되지 않아 이쪽저쪽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이력서를 넣어야 할 때. 조바심을 일으키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독립하고 싶었던 유년기를 지나서 이제는 혼자서 고지서를 처리하고 혼자서 밥을 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 인생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히 익숙해지는 일들이 많이 있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던 일도 돌이켜 보면 잘 되지 않아 조바심을 일으켰던 것들이다. 


그러니 지금 잘 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한숨 돌리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자



그래, 시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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