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Aug 31. 2017

파출소 옆 오래된 빌라

노을이 지는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는 일



나는 파출소 옆 오래된 빌라에 살고 있다.

지금이 몇 시인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거실로 가니 노을이 지는 시간이었다.

노을 보기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하는 책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다소 초라하다.

돈을 모아서 페인트 칠도 새로 하고 새시도 바꾸고 싶지만

밑에 집 할머니가 허락해 줄리가 없어서 포기했다.


그 초라한 계단을 올라가면 유리 없는 문이 하나 있는데 문이 오래되어서

열리지 말라고 누군가 줄로 묶어 놨다.
이 줄을 묶은 사람은 아직 이 빌라에 살고 있을까?


옥상에 올라가니 내가 페인트칠 할 때 썼던 의자가 두 개 있다.

페인트가 묻어있다.

파출소에서 몇 년을 고생하던 이 의자는 높으신 누군가가

철제의자를 쓰다가 피의자가 던지면 어떡하냐는 말과 함께 버려졌다.

이 의자는 수많은 사연을 담은 사람들을 앉히고 이제 나에게 정착했다.


거기에 앉았다.

이 집에 산지 5달이 다 돼 가지만 오로지 '노을'만을 보러 간 것은 처음이다.


잡초가 무성한 스티로폼 화분 5개가 있는데 처치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것만 치우면 조금 더 올라오고 싶은 옥상이 될 것 같은데...


역 앞에 위치한 우리 집의 옥상에서는 기차가 수시로 드나든다.

'하루키가 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에서 다자키 쓰쿠루의 직업이 역을 짓는 사람이었지...'

그 소설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자주 역에 가만히 앉아 기차가 드나드는 모습을 본다.

조금은 그 다자키 쓰쿠루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왜 기차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문득 기차가 드나드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차를 기다릴 때는 언제 오나 한참을 기다렸는데 말이다.







이 오래된 빌라가 좋다.

옥상에 올라가면 가리는 게 없다.

한강뷰가 아닌 기차역 뷰라도 좋다.


끊임없이 발견에 발견을 한다.

대단하게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지금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나냄새 나서 신나셨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