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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ul 08. 2019

오래된 빌라에 물이 새면 비용이 얼마나 나올까?

저는 저와 동갑인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2017년에 겁도 없이 오래된 빌라를 셀프 리모델링하겠다며 구입한 빌라는 여태까지는 속 썩이는 일이 없이 잘 버텨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함에 따라 주말에 동원이 된 저는 월요일날 연가를 썼습니다.

2주 연속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월요일 아침.

밑에 집 아주머니가 문이 깨질 듯 과격하게 노크를 합니다.


'우리 집에 물이 새는데 한번 와보쇼잉'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시는 그 아주머니는 언뜻 듣기에 억양이 상당히 전투적이었습니다.

저도 전투 모드를 사용해야 하나 고민될 때 즈음에

그렇게 빡빡한 사람 아니라며 같이 얘기를 해보자고

거센 억양으로 이야기하셨습니다.


'아 그냥 말투가 전투적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안심을 했습니다.

오래된 빌라는 시한폭탄과 같고 같이 사는 사람들의 정보가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는 긴장을 해야 합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누수탐지하는 사장님을 불렀습니다.

혹시나 밑에 집 아주머니와 연결된 사장님이 과도한 비용을 청구할 것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빌라촌에는 누수탐지하는 업체가 있기 마련입니다.


누수탐지라는 것은 청진기와 비슷하게 생긴 헤드폰을 쓰고 바닥에

기기를 가져다 대는 방식입니다.

물이 줄줄 새는 소리를 듣는 그 작업은 1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기차소리와 전투기 소리가 난무하는 악조건 때문에 결국

확신하지 못한 채 화장실 타일을 뚫었습니다.


난장판이 된 나의 욕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언제 끝나나 하고 가봤더니 이런 풍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셀프 인테리어로 나름 자신감 있게 아는 척했던 내가 작아졌습니다.

누수탐지는 확실한 전문직이었습니다.

욕실 타일을 다 깨면 저렇게 흙이 나오고 그 흙을 파내면 상수관 하수관이 나온다는 사실을

30년 가까이 살면서 몰랐습니다.

물을 쓰기만 했지 어떻게 나오는 건지는 잘 생각을 안 해봤던 것입니다.


경이로움과 함께 걱정이 됐습니다.

아.... 이거 돈 많이 나오겠구나....

그래도 자취하면서 누수탐지까지 불러본 지인은 없기에

새로운 경험이다 생각하고 브런치에 올릴 생각을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뜨거운 물이 지나가는 부분 주위에 어떤 용액을 뿌리면

거품이 나오고 그걸로 센 부분을 감지하는 시스템입니다.

일단 감지를 하면 파이프관을 잘라내고 새로운 관으로 연결을 하고 이걸 다시 덮어야 하는

고된 작업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얼음물을 수시로 대령해가면서

아침 9시 반에 시작된 작업은 3시가 다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누수를 잡지 못해 오래 걸렸는데 추가 비용은 없는 듯했습니다.


같은 타일이 없어서 다른 타일로 땜빵

장장 6시간이 다된 작업시간이 끝나갈 때쯤

도대체 이런 작업은 내가 돈을 얼마나 줘야 할 것인가?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100만원? 너무 비싼가?


'사장님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얼마예요?.....'

'65만원입니다.'

넉살 좋은 밑에 집 아주머니가 5만 원을 깎아주셨고 결국

60만원을 지불했습니다.

이 바닥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60만 원.... 음.... 시장은 어찌 이리도 가격을 잘 책정할까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오래된 빌라에도 작용하나 봅니다.

아무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합리적으로 보이는 가격이었습니다.

내게 없는 장비와 기술을 가지고도 많은 시간과 땀까지 쏟아낸 아저씨는

오늘 일당 60만 원을 챙기셨습니다.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다음 타임에도 작업이 있는 듯했습니다.


역시 기술자가 돈을 많이 버는 자본주의 경제에 살고 있구나를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60만 원을 이체시켜 드렸습니다.



오래된 빌라에 물이 샌다면 대략 이 정도 나오겠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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