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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01. 2017

낮잠

야간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항목

나는 낮잠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게을러 보이고 의욕 없는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야간근무를 하게 되면서 절대로 빼먹으면 안 되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 됐다.

낮잠은 필수다.
어쩌다 일이 생겨 낮잠을 자지 못하고 출근하는 날이면 야간 근무를 하는 내내 눈꺼풀이 무겁고 시큰거리며 의욕이 없어진다. 

그러면 이내 피곤하냐는 선배의 질문이 들어온다.


낮잠은 내 삶의 여유라는 부분을 담당한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던 나에게 낮잠을 자는 습관이 생기면서 빈 공간이 생겼다.
내 몸이 편안해야 올바른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출근하기 전 2시간 정도를 자고 나면 몽롱한 정신에 커피를 내린다.
특이하게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다. 자다 깨어나서 저녁밥을 만들기 전에 정신을 찾아야 한다. 야간 근무를 하면서 몇 안 되는 좋은 점은 저녁에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커피를 몇 모금 마시면 나를 위해서 저녁을 차린다. 

냄비째로 먹거나 프라이 팬에 있는 음식을 그대로 퍼먹지는 않는다.
혼자 살면서 나에 대한 대우를 해주는 건 나밖에 없다.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면 그위에 파슬리 가루를 뿌리는 정도로 내 기분은 좋아진다. 

간단하지만 나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점에서 파슬리 가루와 낮잠은 비슷하다. 


그렇게 저녁을 지어먹고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남들에게는 다 끝나가는 내 하루가 시작된다.
남들과 다른 내 시차 덕분에 이틀을 사는 기분으로 긴 하루를 재부팅한다. 

낮잠을 잔 덕택에 다행스럽게도 긴 밤이 아무 사고 없이 지나간다. 

야간근무가 끝나면 이틀을 쉬기 때문에 야간근무가 끝난 아침은 평범한 직장인의 금요일 밤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침에 잠이 들어 4~5시간을 자고 일어나면 내 휴일이 시작된다.


낮잠▷야간근무▷아침잠

이 패턴이 매끄럽게 이어져야 건강을 조금이나마 챙길 수 있다.
경찰이 되기 전에는 야간근무 그까짓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보니 정말 위험하다. 

젊은 사람에게도 나이 드신 선배들 한테도 위험하다. 

그래서 낮잠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다. 

이 일을 해서 밥 벌어먹고살려면 빠지면 안 되는 쉼표인 것이다.


야간근무를 하시는 다른 직종의 사람을 만나면 뭔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나와 동질감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바빠도 낮잠을 빼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낮잠 같은 행복한 일들이 내 일상에 조금 더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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