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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2. 2018

2018년을 맞이하며

파출소에 12월 31일과 1월 1일

3년째 12월 31일 야간근무가 걸렸습니다.

지난 것에 대한 후회와 새로운 것에 대한 다짐으로 가득 찬 시간을 파출소에서 보냈습니다.

일을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어쨌든 외롭진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신고가 빗발칠 것 같지만 의외로 조용한 시간이었습니다.

범죄자들이 왔다 갔다 하는 삭막한 파출소지만 약간의 사치를 부려서 직원들끼리 케이크에 초를 꽂고 파출소 불을 잠깐 끄고 소소한 파티를 했습니다.



올해는 파출소로 직장이 바뀌고 정식 발령을 받은 지 처음 맞는 해였습니다.

불타던 정의감은 현실에 맞게끔 조정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활활 타던 초심자는 적당히 요령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1년 동안 조금은 힘을 빼고 직장 생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파출소 팀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유독 술에 취해 공격해오던 사람들에게 관대했던 우리 팀이었지만 그 또한 적응해 나갔습니다. 

그 조그마한 곳에 있던 정치적인 모습도 적당히 관심을 끄고 스트레스 덜 받는 방향을 찾아가는 한 해였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났습니다. 

단순히 술에 취한 취객, 집을 나간 고등학생, 치매할머니, 사람이 죽어 나가는 범죄까지 남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사건들을 겪어야 하는 것이 제 직업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한 해였습니다.

동네가 조용하면 조용함에 감사하고, 시끄러운 밤 시간대가 지나가면 그 안도감으로 아침을 맞았습니다.

야간근무를 끝내고 아침에 침대에 누우면 완벽한 순간이옵니다.

그 완벽한 시간이 교대근무에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안정감과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자도 된다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물론 건강은 날로 망가져가는 느낌도 같이 들긴 합니다.



이렇게 파출소에서 정식으로 보내는 2017년이 지나고 2018년을 맞이했습니다.

2018년에는 어떤 사건들이 있을까 기대가 됩니다. 

틀에 박힌 사무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사람 모두 다른 사건을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 같습니다.

2018년에도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며 출근하고 싶습니다.

'출근하기 싫다...'라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래도 꽤 매력 있는 직업이니까요.


순찰차에서 보내는 새벽 3시쯤에 드는 생각이 행복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렸을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왜인지 모르게 낯뜨거웠는데

어느새 마주치는 사람 모두에게 웃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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