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동생이 자살하려고 한다.'
이런 신고가 들어오면 긴장이 된다.
그날도 긴장한 상태로 반지하 그 집 앞에 섰다.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집 앞에 서면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여러 가지 주어진 조건들에 맞춰 강제 개방을 할지 말지 결정한다.
(물론 결정은 나 같은 신임이 하는 건 아니다.)
어떤 팀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하는 시간이 달라진다.
그날 함께 있었던 우리 팀장은 바로 강제 개방을 선택했다.
119 구조대원이 강제 개방을 했더니 방안은 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방안에 가득 찬 하얀 연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술병, 빨래건조대에 걸려있는 옷가지들
그런 것들이 보이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날 좋지 않은 선택을 했던 그 사람은 살았다.
좋지 않은 선택을 하게 했던 인간관계, 사회 같은 것들은 둘째 치고,
일단 살았다.
그 생의 일부분이나마 내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누군가 내가 근무하는 관할지역에서 내가 근무하는 시간대에 생을 마감하게 되면
출동을 한다.
나는 죽음을 26살이 돼서 처음 마주했다.
얼마나 자세하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광경에 마주하게 되면
힘이 빠진다.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는 그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게 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뭔지 모를 두려움도 생긴다.
'숨을 쉬지 않는다.'
이런 신고를 나갈 때에는 마음이 착잡하다.
그날 맨 처음 그 죽음을 발견한 사람은 자원봉사자다.
요일을 정해놓고 자원봉사하러 집에 찾아가는 그분은
30분 동안 오열했다.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지난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주변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것을 또 자주 겪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이 버텨내기 힘든 일이다.
짐작도 하지 못할 그 오열 앞에서 일을 해야 하는 그때에는
뭔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한스럽다.
이어서 아들이 찾아와 오열을 시작하면 고개를 돌린다.
진정하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와도 되는 그 시간까지 기다린다.
나 같아도 진정이 안 될 것이 뻔한데 그런 말을 해야만 한다.
생과사에 경계 어디 즈음에 서서 일을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되기 전보다 되고 나서가 힘든 직업이다.
사연 많은 그 사건들 앞에서 겸손해지길 오늘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