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호 Mar 12. 2022

코로나보다 더 두려운 것

너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나 보지?

터키, 2020년 4월의 어느 날.



피나르바시(Pinarbasi)를 지나 카이세리 주를 벗어나는 경계선에 다다랐다. 예상했던 대로 그곳에는 경찰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는 경찰이기에 이제 반갑기까지 하다. 한데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잠시, 그들은 내게 통행증을 요구한다. 뭣이라, 통행증이라고?


코로나가 확산됨에 따라 터키의 이스탄불, 앙카라를 포함해 31주가 봉쇄되었다. 카이세리도 그중 하나였고 통행증 없이 아무도 지나갈  없었다. 나는 이틀 전에 카이세리 주에 들어왔다. 들어올  나는 경찰들에게 무릎 꿇고(?) 빌었다. 조지아로   있게끔 제발 카이세리를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들은 고심 끝에 나를 들여보내 주었고 내 딴에는 일단 들여보내 주었으니 나가는 것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건 대체…


내 앞을 막아선 경찰 아저씨는 요지부동이었다. 번역기를 써서 사정을 설명해 보지만 상대방도 똑같이 번역기를 쓰며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음속으로 타자를 치면 경찰 아저씨는 광속으로 타자를 친다. 그렇게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 내가 얻은 답변은 결국 통행증 없이는 안돼, 라는 것이었다. 경찰 아저씨의 말대로 인근 마을로 통행증을 받으러 가야 했다. 터키 여행을 하면 누구나 친절한 하산씨를 만난다. 내가 만난 하산은 통행증 발급이 굉장히 까다로울 거라는 말을 진작에 한 바가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빛 한 점 없는 흐린 날씨가 오늘 하루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걸 암시하는 거 같았다.


경찰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마을의 행정 사무소를 찾았다. 사무소 직원은 나에게 경찰서로 가란다. 경찰이 보내서 왔는데 경찰서를 가라고? 나는 약간 의아해했지만 하는 수 없이 직원 말대로 경찰서를 찾았다. 그런데 경찰은 나보고 동사무소로 가란다. 짜증이 일었지만 별 수가 없었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동사무소를 찾았다. 동사무소 직원은 통행증 발급은 자기들의 소임이 아니라며 나를 돌려보낸다. 


울화통이 터졌다. 이게 무슨 백주대낮에 똥개 훈련인가! 여기서는 저기로 가라고 하고 저기서는 여기로 가라고 하고! 그렇게 했더니만 뭐 돌아가라고? 이스탄불의 국공립 병원을 방문했을 때도 이랬다.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허탕만 쳤다. 그때는 좋은 사람을 만나 운 좋게도 일이 잘 해결되었지만 이번에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었다.


잠시 내 상황을 돌아보았다. 통행증이 없다. 카이세리를 벗어날 수 없다. 카리세리에 아는 사람이 없다. 거처도 없다. 봉쇄가 풀리는데 일주일이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음...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는 모든 게 잿빛을 띄고 있었다. 사람은커녕 그 흔한 들개나 길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뿌옇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거 같았다. 발걸음을 떼야했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탈 기운도 없어서 터덜터덜 힘없이 걸었다. 그렇게 한 20m쯤 갔을까? 갑자기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았다. 동사무소 직원이 창문 너머로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 하자 어디선가 중년의 남자가 나타나더니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는 나를 근처에 있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건물로 안내했다. ‘무슨 영문으로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걸까?'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경찰관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수많은 젊은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 젊은 친구들은 내 존재가 무척이나 반가운 거 같다. 그들은 내게 차와 오렌지를 대접해 주었고 사진도 몇 장 같이 찍자고 한다. 곧이어 경찰 서장이 나타나고 동시에 놀이터의 아이들과 진배없던 젊은 경찰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180도 바뀐다. 잔뜩 움츠려 든 그들을 보니 왠지 나까지도 긴장이 된다.


경찰 서장은 과연 그 직함에 걸맞은 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때의 한국 응원단과 터키 응원단처럼 사이좋게 붙어있던 우리를 보고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어디 갔지?'라며 면박을 준다. 그러고서는 곧 훌륭한 영어로 내게 말을 건네 왔고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근처의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가 괜찮다면 통행증을 발급해 줄게.”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내게 경찰 서장이 묻는다.


“그런데 너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나 보지?”


나는 두렵다고 대답을 했지만 사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그보다 더 중요했던 말은 애써 삼켜야 했다.


‘두려워요.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해 온, 내 꿈과 같은 여행을 이대로 포기하는 게 더 두려워요.’

매거진의 이전글 운명을 뒤바꾼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