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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Mar 28. 2022

아르헨티나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

운명을 바꾼 또 한 번의 만남

터키 봄, 여름 - 카르스



8월이 되었고 한여름이 찾아왔다. 같이 살던 몇몇 친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에 가고 새집으로 이사를 하는 둥 이곳 생활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다행히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터키의 국내 상황은 점점 호전되고 있었다. 이동 제한, 지역 봉쇄와 같은 행정 조치가 하나둘씩 해제되었다. 터키 정부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육해공의 국경을 완전히 개방하는, 이 당시로서는 아주 대담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긍정적인 변화 속,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떠나기는커녕 나는 햄스터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나는 불법 체류자였다.


내가 불법 체류자라니… 불법 체류 따위 영화나 뉴스에서나 존재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조사 끝에 괜찮을 거란 결론을 갖고 시작한 불법 체류였지만 역시 마음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강제 추방의 공포가 그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도시와 도시 간의 경계에는 경찰 내지 잔다르마(지역 치안대)가 상주했다. 그렇기에 카르스를 벗어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우연히 경찰과 마주칠 때면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담벼락에 말을 걸곤 했다.


그날도 어디 멀리 가진 못하고 들개마냥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전방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그들은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였다.


외국인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터키의 외딴 도시에서, 게다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판데믹 상황에서, 안 그래도 보기 힘든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다니. 코흘리개 시절, 동네 재래시장에서 금발의 외국인을 마주쳤을 때도 이만큼 놀라진 않았던 거 같다. 그들의 이름은 루카스와 엄브렐라. 아르헨티나에서 온 이 친구들은 며칠 전 조지아에서 터키로 넘어왔다고 했다.


보통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들은 한눈에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있다. 그을린 피부, 정리되지 않은 수염, 헝클어진 머리칼, 후줄근한 옷, 시큼한 냄새(?) 등이 나면 대충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다. 경우에 따라서 거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길!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은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열려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자전거. 언제인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불쌍하다. 불쌍해. 세상에 네 자전거만큼 고생하는 물건도 없을 거야.”


그렇다! 온갖 잡동사니와 기름때, 먼지, 잔 스크래치 등으로 자전거가 불쌍해 보이면 그건 영락없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의 자전거인 것이다. 모든 장비를 갖춘 내 자전거의 무게는 30kg 안팎. 하지만 이 정도로는 이 아르헨티나 친구들의 자전거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거 같았다.


그들의 자전거는 할리 오토바이만큼이나 크고 육중했다. 자전거 패니어는 물건을 얼마나 쑤셔 넣었는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랙팩은 얼마나 크던지 새끼 곰 한 마리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자전거에 조금이라도 물건을 싣을 수 있는 공간에는 무언가가 걸려 있거나 올려 있었다. 여분의 타이어, 등산스틱, 낚싯대, 심지어 도마까지도.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장비가 정말로 굉장하네. 혹시 얼마나 여행하고 있는 거야?”
“오 년째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어.”
“오 년이라고?”


과연, 오 년이나 전 세계를 여행하려면 저 정도 무장이 필요할 지도. 냉장고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엄브렐라, 오 년이나 자전거를 타서인지 몰라도 너의 허벅지는 너무나도 넓고 탄탄하구나. 허벅지 위에서 스케이트도 탈 수 있겠어.


그들은 터키에서 만난  다른 아르헨티나 커플인 마틴과 베로니카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장을 보러 갔던 그들이 돌아왔고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왠지 모를 어색함이 감돌아 불편했는데 이때의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이들이 나의 가장 소중한 동료가  거라는 것을.  만남이  여행의 운명을 바꿀거란 것을.


우리는 다 같이 근처의 Masal 공원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루카스와 엄브렐라는 오 년 동안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그들은 한국도 가보았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김치가 그립니?"라고 물어보는 재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엄브렐라의 명랑한 목소리에서 튀어나오는 여행담은 기상천외하고 재미난 사건들로 가득했다. 그녀의 여행담은 듣고만 있어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내가 앞으로 가보고 싶어 하는 곳에 대한 예고편을 보는 거 같아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반면 마틴과 베로는 차분하고 조용한 친구들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터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라고 한다. 나는 마틴에게 물었다.


“마틴, 너 혹시 불법 체류는 아니지?”
“맞아. 불법 체류야.”
“진짜?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 경찰한테 잡히는 게 무섭지 않아?”
“아니. 딱히. 터키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법 체류는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발표했거든. 실제로 그동안 경찰 검문소를 많이 지나왔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데?
“!?!?!?!?”


카르스에 갇혀 답답하고 무기력했던 나날들. 경찰에게 잡혀서 팬티 바람으로 강제 추방될까봐 노심초사하던 나날들. 한데 이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길을 떠날 수도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덥수룩한 턱수염을 하고 있는 마틴이 마치 구원의 말씀을 전하러 온 예수님처럼 보였다.


우리는 도심의 외곽지까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잠깐이었지만 역시나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과 함께 달리는 건 정말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동안 나를 옥죄고 있던 걱정이 말끔히 사라지고 잃어버렸던 자유가 다시 찾아온 거 같았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자. 조만간 나도 준비를 한 다음에 너희들을 따라가도록 할게. 그때 꼭 다시 만나자고!”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는 집을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눈부신 햇살이 주변을 환히 밝혔다. 때마침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 또한 불어왔다. 내 가슴은 이제껏 없었던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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