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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pr 03. 2022

사람이 쓰러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터키(D+177) 8월의 어느 날 - 터키 동부



-이그디르를 지나 아라라트 산(5,137m)을 가로지르는 D975 국도에 올라탔다. 아라라트 산은 터키의 최고봉으로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정박한 성스러운 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활화산답게 홀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산봉우리에 쌓인 만년설이 사람의 접근을 쉬이 허락하지 않음을 속삭인다. 아라라트 산을 지나면 쿠르드족이 많이 살아서 소위 쿨디스탄(Kuldistan)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들어선다.


간밤에 불안해서 잠을 못자서인지 머리가 띵하다. 어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잔다르마는 무서운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이곳은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는 지역이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테러리스트라 하면 PKK(쿠르디스탄 노동자당-쿠르드족의 분리 독립을 추구)를 말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 외교부가 여행 경보를 내린 지역이 이제 지척이군.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쿨디스탄에 들어선 후, 완만한 내리막길을 신 나게 내려가고 있었다. 전방에 검은 무언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사람이다. 남자는 엎드린 자세로 대자로 뻗어있다. 움직임이 전혀 없다. 순간적으로 내 숨이 멎는다. 설마 시체? 살인? 테러리스트?


주위를 둘러보지만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용기를 내어 남자를 불러도 보고 툭툭 어깨를 쳐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건드리면 터지는 비눗방울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남자의 고개를 돌려본다. 휴우, 다행이다. 숨을 쉬고 있구나. 안도감이 드는 것도 잠시 나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거린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백주대낮에 아스팔트 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걸까? 설마 납치? 탈출? 테러리스트?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당장 112(터키의 구급 전화번호)에 전화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상황에서 수화기 너머로 대체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일단 급한 대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다. 나는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며 신호를 보낸다. 차들이 워낙 쌩쌩 달리기에 금방 설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후 펼쳐진 광경에 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분도  되어 승합차  대가 멈추더니 안에서  남자가 튀어나온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터키어와 몸짓 언어를 활용하여 상황 설명을 한다. 그러는  자동차  대가  멈춰 선다. 그리고 불과  분도  되어 주변은 모터쇼를 방불케  정도로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로 가득 찬다.


사람들은 쓰러진 남자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서 있다. 그 많은 자동차에 남자만 타 있을 리는 없을 텐데 어쩐 일인지 죄다 남자이다. 그건 그렇고 이 많은 사람들 중 그냥 구경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들 정말이지 자기 자식이 쓰러진 것 마냥 긴박한 모양새다. 다 같이 힘을 합치면 코끼리 한 마리도 번쩍 들어서 천리길도 갈 수 있을 거 같은 기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합의가 이뤄지고 누군가가 구급차를 부르려고 하는 찰나, 쓰러져 있던 사내가 꿈틀거린다. 정신을 차린 그는 슬로우 모션을 보듯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곧 제 발로 우뚝 선다. 사람들은 그의 옷가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그에게 “괜찮은가?”하고 묻는다.


어리둥절한 남자는 사태 파악이 되지 않는 거 같다. 실수로 레몬을 씹어버린 똥개가 지을 법한 표정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물음에도 횡설수설할 뿐이다. 그러더니 그는 별다른 감사의 말도 없이 홀연히 떠나가 버린다. 사람들은 그가 제대로 걷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하나 둘 사라진다.

 

‘뭐야 이 인간. 완전히 멀쩡하잖아. 대체 왜 쓰러져 있던 건데? 술 먹었니?’


뒤에서 이 모든 사태를 조망하던 나는 어이가 없어서 기가 찬다. 심적으로 괜히 손해를 본 거 같은 느낌이다. 한편으론 너무나도 멋진 사람들을 본 거 같아서 안심도 된다. 생각해 보니 쿨디스탄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곳에 사는 쿠르드족은 너무나도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차 대접과 담소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 건 맞지만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람 사는 세상 결국 다 비슷한 법이니까. 당신은 사람이 쓰러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나는 답은 하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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