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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pr 18. 2022

반 호수에 사는 괴물과 사람들

터키(D+179) 8월의 어느  -  호수



- 저녁노을이 산등성이 너머로 일렁거릴 때쯤 ‘(Van)’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는 터키에서 가장  호수로  면적이 제주도의  배가 넘는다. 수중 염분의 농도가 바다에 육박하는  호수에는 신기하게도 진주송어라고 불리는   종류의 물고기만 살고 있다.


반 호수에는 괴물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995년 처음으로 정체를 드러낸 이 괴물은 지금까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괴물이 사는 호수가 세상에 한 둘이겠냐만은 이곳처럼 목격담을 근거로 괴물 동상까지 세운 곳은 많지 않을 거다. 그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깊은 호수이니(평균 171m, 최대 451m) 어쩌면 정말로 괴물이 살고 있을지도… 괴물의 존재는 현재까지도 사람들의 구설수에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나는 강풍을 헤쳐가며 달리고 있었다. 반 호수에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남자들 몇 명은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할지라도 1,600m 고원에 자리 잡은 호수가 지중해처럼 따뜻할 리가 없다. 게다가 바람에 거칠게 넘실대는 호수는 조금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물 만난 물고기처럼 놀고 있는 저 아저씨들은 대체…


터키의 시골 남자들은 외모만 보면 산적과 진배없다. 대부분 털북숭이에다가 꽤나 험상궂게 생겼다. 하지만 의외로 깜찍한 구석도 많아서 어떨 때는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들이 그랬다. 물속에서 웃고 떠들며 서로 노는 모습이 애인지 어른인지 모를 정도였다.


‘아이처럼 신나게 논다라... 그런 거라면 나도 질 수 없지!'


모름지기 진짜배기 여행자라면 아이같은 순수함과 함께 계절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몸 안에서 피가 용솟음치는 걸 느끼며 호숫가로 달려간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중된다. 그들은 갑자기 어디선가 혜성처럼 나타나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는 외국인이 꽤나 신기한가 보다. 나는 등 뒤로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기세 좋게 호수로 뛰어든다.

 

호수의 물은 과연 상당히 차가웠지만 한껏 달아오른 내 흥분을 막을 순 없었다. 수중 염분 농도가 높아서 그런지 수영을 하기가 생각보다 더 쉬웠다. 나는 더 깊은 곳을 향해 힘차게 팔을 휘저었다. 오늘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는데도 피로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수록 신기하게도 더 큰 힘이 솟아올랐다. 이대로라면 어디까지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한동안 이쪽저쪽으로 첨벙거리던 나는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호숫가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정적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문득 반 호수의 괴물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본 그 괴물은 ‘공룡’을 연상시켰다. 거대한 몸집, 무시무시한 외모, 징그럽고 흉측한 피부. 발밑이 싸해지더니 순식간에 공포가 나를 덮쳤다. 괴물이 당장이라도 깊은 수면 아래에서 나타나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나는 육지를 향해 미친 듯이 헤엄을 쳤다. 발이 육지에 닿고 나서도 허겁지겁 달려 물에서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반 호수는 처음 모습 그대로 고요하기만 했다. 때마침 수면 위로 석양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속삭였다.


‘훗. 괴물 따위 있을리가 없지.’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아침햇살 아래 바라본 반 호수는 영락없는 바다의 모습이다. 아침 안개가 호수 위에 그윽했지만 수평선은 비교적 깨끗하게 보인다. 호수에 내비치는 수평선이라니... 넓디넓은 반 호수에 새삼 놀란다. 호수 깊은 곳에서부터 마치 파도처럼 육지로 밀려오는 물결이 참 힘차다. 그 힘찬 기세를 누그러뜨리려고 곳곳에 방파제가 조성되어 있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 위에는 부리가 노란 갈매기들이 총총걸음으로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 때때로 반 국내선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반 호수를 가로지른다.


자리를 정리하고 떠나려는 참이었다. 근처의 가족 나들이객이 나를 초대해 준다. 마음으로는 ‘얼씨구나!’라고 좋아하면서도 별다른 내색 없이 그들의 돗자리에 조심스레 앉는다. 돗자리에는 할머니, 어머니, 딸 둘, 그리고 아버지인지 아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대략 15살 정도로 보이는 딸아이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나에게 차를 대접해 준다. 그녀의 움직임이 얼마나 노련한 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올 정도이다. 나이를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당장 시집을 간다고 해도 이 방면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 같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별다른 말없이 차를 마신다. 신기하게도 어색함 따위는 없다. 오히려 차의 온기만큼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 마음이 편하다. 그들은 차만 대접하기에 미안했는지 음식들도 꺼내기 시작한다. 먹다 남은 빵 조각, 부서진 페타 치즈, 올리브 장아찌,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과자와 사탕 등.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라는 속담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일 게다. 특히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먹다 남은 빵 조각에서 나는 터키 동부 사람들의 꾸밈없는 인심과 솔직함을 배운다.


적당히 음식을 먹고, 홍차를 세 잔 정도 마시고 나서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남은 음식과 과자, 사탕 등을 몽땅 가져가라고 하신다. 말 그대로 ‘몽땅’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 주려고 한다. 송구스러운 마음에 한사코 사양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결국 가슴 한가득 선물을 받아 버린다.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온다. 송구스러운 마음은 어느새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어 있다.


오랜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 사람의 마음이 오고 갈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타인의 친절과 호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언젠가 나도 받은 것 이상을 타인에게 베풀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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