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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May 09. 2022

하산이 들려주는 터키의 이모저모

터키(D+184) 8월의 어느 날 - 타트반, 하산의 집



- 넴루트 화산에서 하산의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주변이 먹물을 칠한 듯 어두워진 후였다. 하산은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을 통해서 찾은 호스트였다. 그의 집에 무거운 짐들을 맡길 수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넴루트 화산 등반이 가능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하산은 우리에게 터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럽에서 공부한 유학파이자 터키에서 10년 차 가정의로 일하고 있는 하산은 터키의 안팎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터키는 명실상부 전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 중 하나이다. 이슬람은 혼전 성관계를 금지한다. 연애가 금지되어 있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동부로 갈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터키의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는 28살, 여자는 25살. 남녀가 이 나이까지 연애는커녕 이성의 손 한 번 못 잡아보는 경우가 터키에서는 허다했다.


하산은 남자들이 공공연하게 연애도 못 하고 섹스도 못 하니까 필연적으로 강간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순결을 잃은 여자를 협박하여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집단 강간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좀처럼 믿을 수 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욕망이란 숨기면 숨길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언젠가 삐뚤어진 형태로 표출되기 마련인 법.


문득 (Van)에서 만난 멜리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년에 스무 살이 되는 의사지망생이자 히잡을 쓴 소녀였다.


“나는 열두 살 이후로 친구 집에 놀러 간 적도 외박을 한 적도 없어. 아버지가 절대로 안 된다고 하시거든.”


멜리스는 아버지의 과잉보호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나 또한 "그건 좀 지나친 거 같은데?"라며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앞서 말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터키를 포함한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강간범이 자신이 강간한 여자와 결혼을 하면 그 죄를 감면해 주거나 심지어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떻게 강간범이 자신이 강간한 여자와 결혼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건 인도의 사티처럼 악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순결을 잃은 여자는 위로와 보호를 받기보다는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고 더이상 사회생활도 결혼도 불가능한 쓸모없는 도구로 취급되었다. 부모는 평생 홀로 살아갈 운명에 처한 딸의 뒤치다꺼리를 할 바에야 차라리 강간범에게라도 시집을 보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여성의 순결은 이슬람 세계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이와 관련해 하산은 처녀막 복원술에 대해 알려주었다. 터키에서는 신혼 첫날밤, 신부의 몸에서 피가 나지 않으면 신랑이 즉시 이혼을 요구하거나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흔하진 않지만 신랑이 신부를 죽이는 일도 있다. 이른바 명예 살인이다) 그래서 처녀막 복원술이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다. 순결을 잃은 남자는 아무런 죄가 없고 오직 여자의 순결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모스크에 관한 얘기도 흥미로웠다. 에르도안이 집권한 이후 터키 내에 모스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그 수가 무려 20,000개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모스크가 하나쯤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창 건설 중인 크고 화려한 모스크를 찾아보기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처럼 모스크는 넘쳐나지만 정작 모스크를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


터키는 전 국민의 98% 이상이 무슬림이라는데 모스크에 사람이 없다는 건 어쩌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는 수백 명의 사람이 모스크 밖에까지 줄지어서 예배를 드리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터키의 신분증에는 종교를 기재하는 란이 있었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비무슬림은 혹시나 모를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종교란에 일단 이슬람이라고 기재했다고 한다. 98%라는 높은 통계치는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과연 무슬림들은 모두 독실한 신자일까?'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닌 거 같다. 같은 무슬림이라도 무슬림이라면 꼭 지켜야 할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나 라마단 금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비교적 흔하다. 무엇보다 이슬람은 술을 금지하는데 98%가 무슬림인 것치고는 술이 너무 잘 팔린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하는 건 이슬람이라는 말 자체는 종교와 문화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이슬람은 생활밀착형 종교라서 때로는 종교와 일상생활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다시 말해, 종교가 일상생활에 깊게 침투했기에 사람들은 쿠란을 읽지 않아도, 기도하지 않아도 자신을 자연스레 무슬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르한 파묵'의 책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는 책에서 오르한 파묵의 어머니는 종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믿어나 보자.”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 이런 얄팍한 수가 통할 리 만무하지만 어쩌면 적잖은 무슬림들이 그녀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았다. TV에서는, 하산의 농담에 따르면 'Blood and Booobs(피와 여자의 가슴)’의 드라마라는 스파르타쿠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마르마라 해 주변의 부르사(Bursa) 출신인 하산은 출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리스/로마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바깥에는 비가 내렸다. 카르스를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지붕 아래서 쉬는 날에 마침 비가 오다니. 밖에서는 빗방울이 튀고 TV에서는 핏방울이 튀는 와중, 우리들은 침방울을 튀겨가며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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