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호 May 16. 2022

댐에 잠긴 쿠르드족의 마을, 하산케이프

터키 8월의 어느 날 - 하산케이프



-고대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한 데는 두 개의 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나톨리아 동부고원에서 발원되어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그것이다. 우리는 어제부터 티그리스강의 지류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티그리스강 본류가 나타날 예정이었다. 나는 명성이 자자한 티그리스강을 목도하는 순간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티그리스강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건 감탄의 탄성이 아니었다. 그건 탄식의 탄성이었다.


‘이게 진정 티그리스강이란 말인가?’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강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흉물스러웠다. 이 강이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어느 찬란한 문명의 기원이 된 물줄기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 옛날, 정말 이런 곳에 사람들이 정착하고, 부락이 생기고, 활기찬 도시가 생겨났단 말인가? 물이 있을 뿐이지 사막과도 다를 바 없는 이런 황량함 속에서? 내 옆에 있던 마틴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강이 아니야. 강이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댐 건설로 인해 생겨난
흉측한 저수지나 다름없어.”

 

그렇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강이 아니었다. 생명을 품은 강이 이럴 수는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이 강에서는 오히려 생명을 집어삼키는 포악함이 엿보였다.


물 부족과 에너지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터키 정부의 동남부 아나톨리아 개발 계획.(GAP라고도 불림) 이 계획에 따라 이곳저곳 수많은 댐이 건설 중이었다. 우리가 있는 이곳, 티그리스강의 상류도 개발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고 얼마 전 댐이 완공되었다. 댐 건설로 인해 급격하게 늘어난 물은 모든 것을 삽시간에 집어 삼켜버렸다. 풀과 나무, 동물들의 보금자리, 사람들의 터전 등 많은 것들이 물속에 맥없이 가라앉았다.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마을 하산케이프도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 아직 수몰 전인가 아니면 수몰 후인가? 수몰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주민들은 어디로 갔고 그 많은 유적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디 이런 모습은 아니어야 할 텐데.

 

하산케이프는 기원전 9천 년경에 살았던 사람의 주거 흔적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고대 도시이다. 도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싹튼 곳이자 비단길이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다. 최소 천 년은 넘었을 거라고 추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다리가 있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사람이 거주했다는 동굴집이 있는 둥 자연/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마을이었다. 한데...


지독한 더위를 참아가며 도착한 하산케이프에서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내 앞에는 사진이나 TV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수몰'이라는 단어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다. 물에 잠긴다는 게 이런 것일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 우리가 알던 하산케이프는 없었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일말의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앞에는 천편일률적인 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지어진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집들은 깔끔해 보였지만  속에 마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는커녕 사람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막말로 수용 시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같은 핏기 없는 모양새였다.  건설로 인해  8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많은 사람이 난민처럼 새로운 터전을 찾아 고향을 떠나갔다. 남은 자들은 정부가 지은 이 새로운 집들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곳은 일명 'Yeni Hsankeyf'라고 직역하면 새로운 하산케이프란 뜻인데 나는 이게 어떻게 새로운 하산케이프인지 영문을   없었다.


집들 너머로 변모한 티그리스강이 흘렀다. 수면 위로 무언가가 빼꼼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침수된 집의 지붕이었다. 집은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지도 뜨지도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정부의 강력한 개발 정책이라는 명목하에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하산케이프의 주민들. 강 한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는 지붕이 그런 주민들의 처량한 처지를 대변하는 거 같았다. 만약 이곳 주민들이 힘없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 아닌 튀르크족이었다면? 만약 하산케이프가 쿠르드족의 문화유산이 아닌 튀르크족의 문화유산이었다면? 그랬다면 과연 터키 정부는 여전히 국내외의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개발 정책을 강행했을까?


저 멀리 뿌연 먼지 속에 가려진, 온갖 종류의 건설 중장비가 보였다. 개발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가? 하산케이프는 귀중한 알맹이를 영원히 빼앗겨 버린 껍데기에 불과했다. 이곳에는 아무런 특징도 매력도 없었다. 이런 곳에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수몰되기 전 아름다운 모습의 하산케이프는 이제는 새로 지은 상점에서 파는 구겨진 엽서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보고 가야 했다. 우리는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제이넬 베이의 영묘를 방문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터키 정부가 하산케이프의 중요한 문화재 몇 가지는 안전한 곳으로 이전을 해놓았고 이 영묘는 그중 하나였다. 제이넬 베이의 영묘는 강 언저리에 홀로 우뚝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길을 잃은 아이처럼 무력하고 처연하기 그지없다. 사람도 동물도 자연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가 있다. 문화재도 마찬가지이다. 제이넬 베이의 영묘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를 영영 잃어버렸다. 이곳으로 옮겨지기 전에는 어떤 풍경 속에서 어떤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었을지 모르나 모든 게 과거의 영광일 뿐이었다.


길을 잃은 건 비단 문화재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도 길을 잃었다. 어렵게 하산케이프까지 왔지만 여기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더욱 처참하게 변한 하산케이프는 우리의 머릿속을 백지장처럼 하얗게 만들었다. 왠지 모를 허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틴과 베로, 나는 아무런 말 없이 영묘의 그림자 속에 한동안 서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작열하는 태양만이 그 위세를 점점 더해 가고 있었다.




이전 11화 마틴과 베로니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