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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Jul 28. 2022

급작스러운 소식

선택은 자신의 몫

터키 10월의 어느 날 - 안탈리아



- 안탈리아에 다시 돌아오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일 년 전 한국을 떠난 이후, 한 번 밟았던 땅을 다시 밟는 일은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확실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목적은 자전거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나는 이것만이 내가 가야 하는 유일한 길이자 이번 여행을 아름답게 완료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쳤고 내 여행도 위기를 맞이했다. 카르스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애써 타일렀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조금만 더 버티면 상황은 곧 좋아질 거라고. 그러나 기약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그즈음부터였을 거다. 마음 한구석에서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한국에 돌아가는 건 사실상 어려울 거라는 걸. 그리고 불가피하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정반대 방향, 그러니까 동쪽에서 서쪽으로 키를 돌려야 했을 때 나는 대단히 낙담했다. 내 여행이 깨진 유리병처럼 잔혹한 흔적만을 남긴 채 산산이 조각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내 여정의 절반도 채우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돌아서야 하다니.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마저 밀려왔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었다. 둥근 지구에서 정해진 방향이란 없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서쪽이 동쪽이 될 수도 있었으며 길은 언제까지고 어디까지고 이어져 있었다. 키를 돌렸기에 할 수 있었던 경험, 볼 수 있었던 풍경,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었다. 여행은 둥근 지구를 모험하는 일이니까. 그런 여행의 본질이 네모나게 각져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각이 져 있다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갔을 때 밑으로 추락하는 것이라면 그건 단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내 심경은 180도 변화했다. 비록 애초에 가고자 했던 길은 막히고 말았지만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자 모든 게 바뀌었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긴 여행을 떠난 것이니까. 지나온 여행지에서 난 그 아름다움을 수없이 목격했지만 애석하게도 나 자신은 그 아름다움의 일부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마음 급한 방관자였을 뿐이다. 여행지에서조차 ‘빨리, 빨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의식은 언제나 다음 목적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지식하고 딱딱한 목적의식을 잠시 내려두고 세상과 함께 호흡하자 나도 그 아름다움에 점차 녹아들기 시작했다. 비로소 둥그런 대지 위를 둥그런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기했다. 목표의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토록 즐겁고 보람차다니. 여행자는 물이 되어야 했다. 분명 노력도 중요하고 방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구는 둥글고 길이란 결국 어딘가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나는 내 인생도 이렇게 물처럼 유유하게 흐르며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마치  변화한 심정을 대변하듯 여름의 안탈리아는 반년  보았던 겨울의 안탈리아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화창한 날을 맞아 사람들은 마스크를 집어 던지고 당당하게 거리로 나왔다. 에메랄드빛 바다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고 푸른빛이 감도는 해안가 공원은 나들이객들도 북적였다. 종려나무에는 소시지같이 생긴 대추야자가 주렁주렁 달렸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라졌던 관광객들이 재등장하여 식당과 카페를 가득 메웠다. 반년  유령 도시나 다름없던 안탈리아는 다시금 축제의 도시로 완벽하게 돌아온  같았다.


하지만 이런 축제 분위기 속 우리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마틴은 잔디밭에 누워서 핸드폰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비행기표를 구하고 있었다. 며칠 전 마틴은 아르헨티나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급한 기별을 받았다. 마틴의 외할머니의 건강 상태가 악화했다는 내용이었다. 마틴의 어머니는 병간호를 하는 데 있어서 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난 후, 마틴은 굉장히 의기소침했다. 말수가 극히 적어졌고 자전거를 타면서도 무언가 다른 생각에 골몰히 잠겨 있는 거 같았다. 나로서는 그런 마틴을 이해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긴 여행을 하면서 혹시라도 불가피하게 집에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단 두 가지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첫째, 내 신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 둘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변고가 생길 때.


나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쳤을 때 그랬고 새어머니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그랬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강행인가, 귀향인가를 놓고 머리털을 쥐어 뽑아가며 고민해야 했다.


새어머니라고는 해도 그녀가 나를 길러준 건 아니었다. 그녀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던 건 분명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깊은 유대감과 정을 느끼기에는 함께 지낸 시간의 양도 밀도도 부족했다. 만약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나는 할머니 손에 의해 자랐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당시, 나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당신께서 직접 그 소식을 나에게 알렸다.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한 많은 할머니의 삶의 마지막 불씨가 활활 타오르듯, 너무나도 생생했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할머니, 금방 돌아갈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라며 애써 그녀를 위로했다. 그것이 우리가 나눌 마지막 대화라는 걸 알지 못한 채.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건 다름 아닌 새어머니였다. 여성만이 가지는 위대한 인간애와 배려라고 해야 할까. 새어머니는 가족의 정과 유대감 따위를 계산하는 누군가와는 달랐다. 그녀는 홀로,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쏟아내는 그 모든 삶의 찌꺼기와 오물을 받아내었다. 맏며느리로서의 의무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나 아직도 의문이다. 그리고 응당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나는 결국 장례식날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었다.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커다란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날 이후, 나는 새어머니에게 평생 갚지 못할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틴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고민이랄 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다 돌아가는 걸 선택할 테니까. 나 또한 새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 병간호 등으로 나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면 귀국을 택하지 않았을까? 흐음, 어쩌면 아닐 수도. 당시의 나는 오직 목적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우리네 삶이 때로는 살아가는 게 아닌 살아지는 것이며 물처럼 유유히 흘러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으니까.


비행기표 예매를 완료한 마틴은 의외로 홀가분해 보였다.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던 응어리를 날려 보낸 거 같았다. 비행기표가 가지는 마법의 힘이랄까. 떠나기를 머뭇거리는 자에게는 떠날 용기를, 돌아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자에게는 체념과 위안을 주는 힘. 하지만 마틴의 밝은 모습과 달리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마틴이 비행기를 타는 날이 우리가 이별하는 날이자 어쩌면 내 생애에 그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리가 함께 동고동락한 지도 삼 개월째였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아련히 느끼고 있었지만 이리도 갑작스레 찾아올지는 몰랐다. 기분이 울적했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헤어짐을 앞두고 몇 날 며칠을 눈물만 보이는 사람보다 꼴불견인 건 없다. 눈물을 보이는 건 마지막 순간이면 족하다. 그전까지는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게 보내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과 페티예까지의 여정이 있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정을 계속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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