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호 Aug 23. 2022

여행을 떠나기 전

터키 여행 경로


2019년 8월의 어느 날 - 한국, 여행을 떠나기 전



“강직성 척추염입니다.”     


젊은 의사가 나에게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막힌 변기가 뚫린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지병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나였지만, 그 말은 반대로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고통의 원인을 마침내 밝혀냈다는 걸 의미했다. 원인을 안다면야 해결책 따윈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건 시간과 노력, 의지의 문제이니까.   




2017년, 자전거 세계 여행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나는 호주로 건너갔다. 이 불모의 땅에서 이 년 동안 온갖 일들을 다했다. 라면을 만들고, 트럭을 세차하고, 바나나를 자르고, 새벽 1시에 닭 공장으로 출근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워킹홀리데이가 끝날 때 즈음 내 통장에는 충분한 돈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비례해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체중이 줄었고 허리가 아팠다. 너무 무리한 걸까. 갑작스레 오른쪽 눈에 염증이 생겨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호주의 전문의는 몇 가지 검사 끝에 "어쩌면 눈의 염증과 요통이 관련 있을 수 있어"라며 나에게 시급히 귀국할 것을 권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한 달. 불행은 겹친다고 했는가. 어쩌면 그 한 달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던 거 같다.


귀국 후 이튿날, 이 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에게서 이별 통보가 날아왔다. 예기치 못한 일에 내 가슴에 비수가 꽂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내 한 몸 돌보기도 벅찼으니까. 요통은 여전했고 눈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한 가지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메시지를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자전거 여행은 포기해. 가면 안 돼.
그건 너를 더욱 힘들게 할 거야.’


나는 절망에 빠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한동안 방구석에 처박혀서 천장만 바라보았다. 이따금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지만 그 눈물을 구제해 줄 길은 보이지 않았다. 이 자전거 여행은 내 청춘을 다 바친 프로젝트였다. 남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경력을 쌓기 위해, 결혼하기 위해, 내 집 마련을 위해 하는 모든 노력과 투자를 나는 우직하게 이 자전거 여행에 쏟아부었다. 근데 마지막 순간에 그걸 포기하라니...   

  

언제부터 나는 여행을 이리도 갈망하게 되었을까? 어렸을 적 무협 영화를 보며 곧잘 따라 하던 내게 부모님은 “우리 아들, 소림사에 가서 무술이나 배울까?”라고 말하곤 했다. 그게 계기였을까? 아니면 내가 강북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우물 안 개구리의 운명은 둘 중 하나이다. 평생 그 우물 안에 머물든가 아니면 파란 하늘을 선망하며 언젠가 밖으로 뛰어오르든가.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했다.     


"여행 좋지! 근데 왜 힘들게 자전거로 여행을 하려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여전히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다. 왜? 굳이? 자전거로? 분명한 건 나는 오래전부터 세상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라는 것이다. 강물이 얼마나 멀리 흘러가는지, 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왕 세상을 볼 거면 자전거 여행이 아니고서는 안되었다.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자전거의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가 좋았다. 그 속도가 꼭, 나 자신을 돌보고 성장시키면서 세상과도 소통할 수 있는 속도라고 믿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웠다.  

   

진단을 받은 후, 나는 처방약을 복용하며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젊음을 맹신하며 앞으로만 돌진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해하며 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랬더니 가장 먼저 눈이 호전되었고 요통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별의 아픔은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달래 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던 어느 날, 나는 홀연히 3박 4일의 국내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고작 300km 남짓 달린 여행이었지만 나는 실로 오랜만에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게 꼭 필요했던 그것,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300km나 달렸는데 1,000km를 못 달릴까. 1,000km를 달린다면 5,000km를 못 달릴까. 그리고 5,000km를 달린다면 지구 반 바퀴 20,000km를 못 달릴까. 따지고 보면 인류의 모든 역사가 작은 발걸음 하나에서 시작된 거 아닌가. 그 발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았다. 내 앞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차라리 했던 일을 후회하는 게 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것이 청춘의 꿈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2019년 8월 28일, 나는 종이박스에 포장된 자전거를 승용차 뒷좌석에 꾸역꾸역 밀어 넣은 후, 아버지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이별을 앞두고 눈가를 적시었다. 얼마 전 중국에 살러 가는 누나를 떠나보낸 아버지는 이제는 나를 떠나보내기 위해 이곳에 서 있다. 함께 와서 혼자 돌아가야만 했던 아버지의 심정은 그 얼마나 적적했을까.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버지. 몸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이야기는 파리에서 한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했던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암초를 만나 터키에서 지냈던 나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터키에서 472일을 머물렀고 10,000km를 달렸다. 반강제적으로 머물게 된 터키였지만 친절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이 나라는 나에게 모든 걸 보여주었다. 나는 설렘을 가지고 터키에 들어섰고, 고독과 좌절을 겪었고, 만남과 이별을 경험했으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포기 끝에 희망을 찾았다.     


잘못된 길도 없고 막다른 길도 없었다. 길의 형태란 무궁무진했다.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면 모든 길은 어딘가로 이어져 있다는 것. 비록 유라시아 대륙 횡단의 꿈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지만 터키는 내게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나는 터키에서 또 하나의 작은 인생을 살았다. 그곳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