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호 Feb 27. 2022

이 순간, 살아있어서 행복합니다

터키 3월의 어느 날 - 콘야 근처




콘야를 떠나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처음 야영하던 날. 텐트 안에서 책을 읽다가 물을 빼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


주위는 어느새 칠흑 같은 어둠이 대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달이 뜨지 않아 유난히 어두웠던 검은 하늘은 지상의 검은 땅과 그 경계선이 매우 불분명했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잃어버린 어둠 속에서 나는 세상에 중심에 선 듯한 야릇한 기분에 휩싸였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황금빛으로 점점이 빛나는 물체들이 있었다. 인공불빛이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사라지지 않는 별똥별처럼 일정한 속도로 평행선을 그리며 지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발하는 등불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반짝였다. 서쪽으로는 필시 콘야에서 발하는 빛은 대지 위에 놓인 커다란 촛불처럼 주위를 은은하게 밝혔다.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빛은 대기의 산소와 질소, 먼지 등 여러 가지 성분과 부딪혀 다양한 색깔을 발하며 반구형 모양으로 하늘의 길을 따라 세상 끝까지 퍼져나갔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야경에 내 사고는 물론 마치 시간마저 정지한 거 같았다. 곧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감동에 젖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직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충족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문득 '인투더와일드' 주인공 ‘크리스 떠올랐다. 그는 알래스카의 혹독한 겨울 속에서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도중 우연히 순록 떼를 마주하게 된다.  순간 그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크리스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할  있을  같았다. 크리스의 눈물도  눈물도 대자연을 마주한 보잘것없는  인간의 요동치는 감정이 눈물로서 세상에 발현된 것이었다.  어떤 눈물보다도 겸손하고 자연스러운  눈물만이 대자연을 앞에  인간이   있는 유일한 행위였다.  순간 내게는 세상의  어떤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삶과 죽음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풍경의,  자연의 일부였다. 세상과 이토록 연결되어 있다는 일체감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나자 지난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옳은 선택을 내린 나 자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자라났다. 그렇다. 여행을 떠나기로 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 많은 사람이 반대를 하고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이도 적지 않았고 건강 또한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건 후회 없는 선택이자 앞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자양분이 될,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걸.

 

단순히 내 선택과 의지만이 나를 지금 이 자리로 이끈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행복했던 기억과 불행했던 기억,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떠나간 사람, 내게 찾아온 행운과 불운 등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지금 이 자리로 이끈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도, 또한 과거의 그 어떤 나 자신보다도 행복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04화 아나톨리아 고원의 대도시, 콘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