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야에 가면 꼭 가야 하는 곳
터키 3월의 어느 날 - 콘야
- 이스탄불을 떠난 나는 남쪽으로 달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덕분에 내 터키 여행은 날이 갈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었다.
새하얀 목화의 성이라 불리는 온천지, 파묵칼레. 이 따뜻하고 몽환적인 장소는 출입구가 폐쇄된 채 차갑고 정적만이 감도는 얼음 성이 되어 있었다. 이스탄불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안탈리아. 이 터키 최대의 휴양 도시는 관광객이 사라지자 터키 최대의 유령 도시로 탈바꿈해 도시 전체가 멈춘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허탕이었지만 실망감이 그리 크진 않았다. 어쩌겠는가.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그리고 애초에 혼잡한 관광지는 내 취향도 아니고. 나는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이런 관광지들을 무심히 지나쳤고 아나톨리아 고원으로 향했다.
터키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도착한 아나톨리아 고원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콘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달리며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눈앞에는 태평양처럼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그 어디에도 대지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해발 1,000m라는 걸 고려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나톨리아는 '해가 떠오르는 방향(동쪽)'을 뜻하며 오늘날 터키 영토에 해당하는 반도를 말한다. 터키는 자국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만으로 8천 만이 넘는 전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세계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생산되는 농산물의 종류는 가지각색이며 목축업도 잘 발달해 있다. 이 모든 게 아나톨리아 고원의 비옥하고 넓은 땅에서 비롯된다. 노아의 방주가 오랜 표류 끝에 선택한 땅이 왜 아나톨리아 고원이었는지 짐작이 갈 만도 하다.
이 거대하고 비옥한 땅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으로 인해 예부터 이 땅에는 크고 작은 문명들이 스쳐 지나갔다.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히타이트, 로마,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이 이 땅을 토대로 번성하고 멸망했다.
나는 하루 전날 예약해 둔 도심의 호텔로 직행했다. 정말로 기적적으로 발견한 호텔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호텔이고 뭐고 다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이스탄불을 떠난 이후 벌써 이 주가 넘게 텐트 생활 중이었다. 당연히 그동안 샤워도 못 하고 빨래도 못 했다. 내가 얼마나 가련한 몰골을 하고 있을지 거울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근에 사람들이 나를 보고는 흠칫 놀라서 도망가는 이유도 어쩌면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좀비와 다를 것 없는 내 꼬락서니 때문일지도 몰랐다. 휴식과 재충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호텔의 로비로 들어선 찰나였다. 직원이 나를 발견하더니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영업 안 해요. 어서 나가 주세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는 예약을 하고 왔어요.”
“상관없어요. 어서 나가 주세요. 영업 안 합니다.”
그의 등쌀에 떠밀려 문밖으로 밀쳐 나온 나는 닭 쫓던 개처럼 잠시 호텔 정문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이 상황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문이 열려 있는데 영업은 하질 않는다? 글쎄... 아마 내가 아시아 사람이라서 내쫓은 거 같아. 이 망할 놈들. 왠지 이럴 거 같더라. 일단 한 번만 더 사정해 보자.'
나는 문을 박차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직원이 나가라고 외치지만 나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좀비처럼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내게 물릴까 봐 두려웠는지 안쪽 사무실로 줄행랑을 친다. 그러고는 곧 어떤 남자와 함께 나온다. 나는 오늘 내 운명이 이 남자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직감한다.
남자는 우선 레몬 향 콜로니아(Kolonya, 손 세척제)를 권한다. 나는 고분고분 손을 내밀어 세척제를 받는다. 남자는 내 신상 정보를 캐묻는다. 나는 고분고분 내 빤스 색깔까지 알려준다. 남자는 숙박료로 150리라를 제시한다. 빌어먹을, 150리라는 너무 비싸다. 그 돈이면 한끼 식사로 충분한 타북 되네르 케밥을 30개는 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인다. 터키의 숙소는 대체로 흥정이 가능하지만 그럴 여유 따윈 없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설사 그가 엉덩이로 이름을 쓰라고 해도 고분고분해야 한다.
내 고분고분함이 먹혀든 걸까? 마침내 그는 내게 카드키를 건네주었다. 카드키를 손에 쥔 나는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도 얻은 것처럼 기뻤다. 방은 조그마했지만 깔끔하고 필요한 모든 게 잘 갖추어져 있었다. 나는 간단히 짐을 풀고 나서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콘야는 터키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시 전체가 얼음에 갇힌 듯 굉장히 적요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평소 같으면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도시의 이곳저곳 둘러보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시국에 내가 언제 또 따뜻한 침대 위에서 잘 수 있을까. 정말 오늘만큼은 여행 따위 집어치우고 방구석에 누워서 유튜브나 시청하면 그게 행복이겠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잘랄루딘 루미의 영묘.
잘랄루딘 루미. 과연 이 위대한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1207년 탄생한 루미는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교를 창설한 인물이다. 그는 경직된 이슬람 율법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진정한 영적 가치를 찾고자 고뇌했으며 노래와 춤, 시와 염원 등을 통해 신에 대한 무한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
세마는(Sema)는 루미가 만든 메블라나교의 의식(또는 춤)이다. 세마는 신비롭고 놀라운 춤이었다. 수피들(이슬람 신비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누르 텐'이라고 하는 새하얀 옷을 입고 끊임없이 회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의 소(小)우주를 연상케 했다. 그 안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은 물론 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찬미가 어려 있었다. 하나, 내가 춤보다는 문학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내게는 한 시간 가까이 관람한 세마보다는 공연장 대합실에서 오 분 정도 살펴본 루미의 시집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오래전, 내가 잘 따르던 누님이 말했다.
"시가 없으면 세상이 망할지도 몰라."
나는 그녀 앞에서 코웃음을 쳤다. 시가 없어도 세상이 망하기는커녕 벼룩의 간만큼도 변하지 않을 거라면서. 하지만 루미의 시를 읽고 나니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없다면 세상이 망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세상이 될지도 모를 거라고. 사람의 온기가 이 도 정도는 낮은 세상이,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 일 리터 정도는 적은 세상이, 덜 아름답고, 덜 반짝거리며, 덜 애타고, 덜 그리운 세상이.
아쉽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루미가 잠들어 있는 영묘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시 속에 담긴 메시지의 울림과 오묘함, 아름다움은 내 영혼에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신은 바다의 한 물방울이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물방울 속에 바다가 들어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