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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Mar 05. 2022

아나톨리아 고원의 들개

터키 4월의 어느 날 - 아나톨리아 고원



자전거 여행자가 들개를 마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첫째,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사람. 좋은 생각이 아니다. 들개의 특성상 도망치면 더 기세 좋게 쫓아온다.
둘째, 멈춰서 들개와 눈싸움을 시작하는 사람. 정면에서 눈을 응시하는 한 들개들은 쉽게 달려들지 못한다. 안전하게 들개를 지나가는 방법.
셋째, 들개를 향해 짖거나 돌진하는 사람. 누가 짐승인지 모르겠다. 이들은 머리 뚜껑을 열어 뇌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귀중한 연구 대상이다.


터키의 들개는 여행길에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들개,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콧대 높은 들개 등 여러 종류의 들개가 있었지만 녀석들은 대체로 사람을 좋아했다. 내 존재가 어찌나 반가운지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거침없이 나에게 달려드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부끄럽지도 않은지 내 앞에서 하얀 배를 훤히 드러내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들개와 마주칠 때면 달리는 걸 멈추고 녀석들과 서로의 온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도로변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들개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그리 높지 않은 흙길을 오르는 녀석의 모습은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뒷다리는 자신의 체중을 지탱하지 못해 오징어 다리처럼 허우적거렸고 그 때문에 거의 기어가다시피 움직였다. 멍멍 짖지는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했는데 목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았다.


마침내 내 발치까지 다가온 녀석은 꼬리를 선풍기처럼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가여운 마음에 한 번 쓰다듬어 주니 기분이 좋은지 바닥에 온몸을 뒹굴었다. 녀석의 피부에는 오돌토돌한 무언가가 많이 나 있었다. 그리고 노인 특유의 케케묵은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강하게 풍겼다. 딱한 것. 너 아무래도 큰 병에 걸렸거나 많이 늙었구나.


그 이유야 어찌 되었건 녀석에겐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스스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아껴 먹으려고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둔 참치 캔 하나를 꺼냈다.(터키에서 유난히 비싼 게 있다면 그건 자동차와 아이폰 그리고 참치 캔이다) 녀석은 며칠 만에 구경하는 음식이라는 듯 그 검고 촉촉한 코를 캔 속에 처박고 허겁지겁 참치를 핥아먹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가방을 열어 이번에는 비상용 과자를 꺼냈다. 녀석은 먹성만 보자면 아직 죽을 날이 멀었다는 듯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마음 같아서는 녀석이 눈을 감을 때까지 보살펴 주고 싶었지만 먼 길을 가야 하는 나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보자 녀석이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어가며 나를 필사적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더욱 힘차게 페달을 돌려 속도를 높였다. 녀석이 나를 따라오다가 행여라도 자동차에 치이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터키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녀석이 쫓아올 엄두도 내지 못 하게 한시라도 빨리 녀석의 시야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르는 나였다. 개는 인간의 신호를 읽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이렇게 뒤를 돌아봄으로써 혹시나 녀석에게 ‘나를 따라와’라는 잘못된 신호를 전달할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죽음의 문턱에 선 녀석의 모습이 도무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녀석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엄습했고 그 점이 나를 계속 뒤돌아보게 했다. 녀석은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황량하고 싸늘한 들판에서 외로이 죽음을 맞이하겠지.


아나톨리아 고원에 들어선 후, 고원에 펼쳐진 광대한 대평원을 헤매는 들개들을 종종 목격했다. 도시에 서식하는 들개와 달리 이곳의 들개에게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 특유의 강인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녀석들은 철저히 혼자였고 살집 하나 없이 깡마른 경우가 많았다. 심심찮게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있는 들개들의 사체를 목격하기도 했다. 얼굴이 흉측하게 찌부러지거나 선명한 핏자국과 함께 온갖 내장이 터져 나온 것들은 로드킬을 당한 게 분명했다. 반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들은 아사라든가 병으로 죽은 것처럼 보였다.


잔혹한 환경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하는 들개들. 그걸 보자니 신기하게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녀석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죽음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은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사람도 짐승도 마을도 별도 모두가 겪어 왔던 일을 우리가 구태여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두려워할 게 있다면 그건 어떻게 죽느냐일 것이다. 만약 이곳의 들개처럼 혼자서 쓸쓸히 죽어 간다면 그것보다 슬프고 괴로운 일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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