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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Mar 13. 2022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너뜨린 세상

그곳에는 추위와 적대감 그리고 단절만이 존재할뿐.

터키 4월의 어느 날 - 아나톨리아 고원 동부



-  터키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스탄불은 물론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 이즈미르, 콘야  대도시를 중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치솟는 확진자 수에 터키 정부는 강력한 행정 조치를 명하기 시작했다. 주요 도시들이 봉쇄되었고 통금 시간이 겼다.


이런 조치들이 하나둘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의 경계심도 높아져 갔다. 이 시기, 터키 사람들 그 누구도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짓궂은 아이들이 "코로나, 코로나" 또는 "칭(중국), 칭" 하면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왔다.     


식당에 가면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부터 두 눈망울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변하는 사람, 심지어는 귀신이라도 본 듯 '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까지. 이러한 반응 속에 나는 때로는 입장을 거부당했고 때로는 어디서 왔고 언제 터키에 입국했는지 등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한 후에야 겨우 5리라짜리 되네르 케밥이나 파니니를 닮은 터키식 토스트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 내 자전거 여행은 그 본연의 기쁨을 잃어 갔고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그러던 중,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피나르바시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렸을까. 온종일 우중충했던 하늘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 변화는 해발 1,500m의 고원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주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건 곧 콩알만 한 우박으로 변했다. 갑자기 미친 듯이 쏟아지는 우박은 세찬 바람을 타고 내 온몸을, 특히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대로 있다가는 뺨에 구멍이 뚫릴 것만 같았다.


나는 급히 피난처를 찾아보았다. 방금 지나친 버스 정류장이 떠올랐고 젖 먹던 힘을 다해 그곳으로 페달을 돌렸다. 정류장까지는 고작 300m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그 짧은 거리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자전거는 세찬 바람에 휘청거렸고 내 뺨은 이제 불덩이라도 닿은 듯 화끈거렸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의 가녀린 처마는 나를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했다. 우박은 바람을 타고 사선을 그리며 나를 습격했고 가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나는 지독한 물세례를 뒤집어써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 세상이 번쩍거리며 벼락이 연이어 내리치기 시작했다. 내 코앞에서 벼락이 떨어졌고 그 강렬한 번쩍임에 나는 한순간 눈이 멀고 두려움에 심장이 얼었다.


추위, 피로, 벼락에 대한 공포 등 상황이 이리 절박한데 누구 한 명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었고 추워서 몸을 덜덜 떨었다. 여행에는 좋은 일로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내 신세가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날씨가 진정되고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인근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길은 온통 진흙탕이어서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진흙탕을 헤쳐가며 마른 땅을 찾아 마을을 정처 없이 헤매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트랙터 한 대가 나타났다. 트랙터에 탄 남성은 내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주었고 그를 따라간 곳에는 목가적인 집 한 채가 있었다.


남성은 나를 소파에 앉히고 따뜻한 홍차와 달콤한 로쿰(‘터키쉬 딜라이트’라 불리는 전통 젤리)를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두꺼운 점퍼와 담요를 내주었다. 나는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몰랐다. 내 몸이 서서히 녹기 시작할 즈음 그가 내게 말했다.


"오늘 하룻밤 여기서 머물러도 좋아."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 이거야말로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자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였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 세상은 전쟁이나 기아, 범죄 등이 끊이지 않는 혼란하고 위험한 세상으로 비친다. 하지만 그건 세상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 사람은 우리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모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으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데 주저함이 없다. 톨스토이가 말했듯 어쩌면 인간의 선행이야말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아... 만약 이 이야기가 이대로 마무리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날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인간의 선행조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기력했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이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는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나는 장내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이장은 단호하게 "너는 여기 머물 수 없어. 당장 마을을 떠나"라고 내게 통보했다. 이유는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마을을 책임지는 이장으로서 감히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집 안까지 들여놓고 개 쫓듯 내치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은 내게 미안한지 줄곧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마을에서 쫓겨나는 내 발걸음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뼛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 추위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고 진흙탕을 지나오느라 신발과 바지는 홀딱 젖은 것도 모자라 엉망진창이었다.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이번만큼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은 없었다. 바이러스가 만연한 어려운 상황에도 꿋꿋하고 긍정적으로 여행을 해오던 나였다. 바이러스 탓을 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바이러스라는 불청객을 마음속 깊이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마저도 불태워서 까만 재로 만들어 버리는 전염병의 무서움. 친절과 호의가 사라진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그곳에는 추위와 적대감 그리고 단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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