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봄, 여름 - 카르스(Kars)
- 터키 북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 카르스. 해발은 1,768m, 인구는 약 9만 명. 겨울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려 눈의 왕국이라고도 불리는 곳. 과연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한국 사람이 몇이나 될까.
봄을 맞은 카르스는 맑은 날도 많았지만 궂은 날도 많았다. 무엇보다 해발 2,000m에 육박하는 고원 도시답게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구나, 라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인가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리고는 천둥 번개와 강한 돌풍을 동반한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건 정말이지 도깨비가 요술을 부린 거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종종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콩알 크기만 한 우박이 맹렬하게 떨어질 때의 바깥 풍경은 꼭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듯 무시무시했다.
말괄량이 소녀 같았던 카르스의 봄 날씨는 여름이 찾아오자 숙녀처럼 차분하게 바뀌었다. 날씨라는 관점에서 놓고 본다면 카르스의 여름은 아마 지금까지 내가 보냈던 최고의 여름이었을 것이다. 여름 내내 하늘은 매우 화창했다. 높은 해발로 인해 대기층이 얇아서인지 햇볕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기온은 아무리 높아도 26도 정도를 밑돌아서 야외 활동을 하기에 좋았다.
나는 카르스의 거리를 부지런히 걸었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내게 카르스의 풍경은 판타지 영화를 보듯 흥미로운 것이었다. 카르스의 명물 거위가 제집처럼 골목길을 쏘다니고, 들개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소와 양 등 가축들이 들판을 거닐고, 알록달록한 야생화가 지천에 널렸으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환상적인 구름이 하늘을 물들이는 곳. 이렇게 다채로운 풍경 속에서도 유난히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바로 카르스의 사람들이었다.
터키의 동부에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는데 카르스도 마찬가지였다. 쿠르드족의 평균 출산율은 상당히 높은 편인데 이를 증명하듯이 골목마다 아이들로 넘쳐났다.
어느 하루는 마을의 뒷길을 걷고 있었다. 그곳에는 긴 철로가 있었고 철로를 따라서 넓은 빈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잡초들만이 무성했던 빈터에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잔해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너희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돌에 박힌 철근들을 수거하고 있어. 이거 돈이 되거든.”
“이걸 어떻게 빼내는 건데?”
“이렇게 빼낼 수 있지."
아이는 자기 몸통만 한 돌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 후 철근이 박혀 있는 돌을 향해 냅다 내리쳤다. 돌들은 서로 부딪히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내리친 돌이나 타격을 받은 돌이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이들은 돌이 쪼개져서 철근을 빼낼 수 있을 때까지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아이들의 얼굴과 옷은 이미 석재 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장갑이 필요가 없는 건지 구할 수가 없는 건지 아이들은 맨손으로 거친 돌을 다루고 있었다. 내가 "손 괜찮아?"라고 물어보자 한 아이가 영광의 상처마냥 여기저기 까진 손을 내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부모가 시킨 일인지 아니면 용돈벌이 삼아 자진해서 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표정은 마냥 밝았다. 그 점이 왠지 모르게 나를 안심케 했다.
골목길이 아이들로 떠들썩했다면 카르스의 도심은 어른들로 분주했다. 도심에는 터키의 프리미엄 슈퍼마켓인 Migros를 포함해 온갖 상점과 식당, 카페들로 가득했다. 약 백여 년 전, 러시아가 이 지역을 점령하던 시기에 지었던 발트해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거리의 양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Eastern Express(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와 카르스를 연결하는 터키의 유명한 관광열차)의 종착지인 카르스는 관광지로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었고 주말에는 관광버스가 카르스 성 주변을 메웠다. 그 덕분에 도심의 부가 쌓이고 있는지는 몰라도 도심 외곽에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갔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가 터키에서 가장 가난했던 도시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 속에서도 가난의 흔적은 아직도 역력하게 남아 있었다. 주름이 가득하고 삐쩍 마른 노인들이 길바닥에서 마스크나 휴대용 휴지 따위를 팔았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서 언제까지고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구두닦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구두를 닦았다. 한쪽 발을 받침대에 올려놓은 채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손님, 손님의 시선 한참 아래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구두를 열심히 닦는 구두닦이. 비용을 지불하고 그에 합당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 누구나 알고 있는 기초적인 경제 개념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 행위가 내 눈에는 왠지 비인간적이고 불공평하게 비쳤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런 푼돈을 버는 일조차도 할 수 없는 빈민들이었다. 그들은 교차로, 길모퉁이, 상점의 입구 등에서 골판지를 바닥에 깔고 앉아 구걸했다. 대다수의 경우 여인네 혼자였지만 아이들을 들쳐 매고 구걸하는 여인네도 있었다. 심지어는 갓난아기를 들쳐 맨 여자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쓰레기통을 뒤졌다. 터키에서는 빵을 신성시 여겨 바닥에 버리지 않고 봉투에 넣어 쓰레기통에 걸어두곤 한다. 빈민들은 이 빵을 찾아 먹었고 들개나 방목시킨 닭들도 이 빵을 찾아 먹었다.
구걸하는 아녀자를 보면서 나는 '과연 저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터키 친구에 의하면 남자들은 놈팡이처럼 여자가 돈 벌어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차이베이(전통찻집)에는 수많은 남자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차를 마시며 물담배를 피우고, 노닥거리고, 타블라 주사위(Tavla, 터키인이 즐겨하는 보드게임)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저들이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아니기를 바랐다.
도시 빈민들의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 등에서 터키로 넘어온 난민이거나 가난한 쿠르드족이라고 한다. 그들의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입고 있는 옷은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에는 무기력함과 좌절감이 가득했다. 죽은 생선 눈처럼 퀭한 눈빛에는 무지와 천박함만이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들을 나쁘게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와 저 사람들의 차이란 종이 한 장보다 더 작은 차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내가 저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면 나 또한 가난의 연쇄 고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거다. 나 또한 무기력과 좌절, 무지와 못된 예절,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평생을 허우적거렸을 거다.
아래는 카르스를 배경으로 한 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이 없다면 천국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평생을 빈곤과 결핍 그리고 억압받으며 살았던 수백만 명의 사람은 천국에도 갈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그 많은 고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삽니까, 이 많은 고통을 쓸데없이 왜 겪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