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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연 Apr 08. 2024

세부에서 만난 아이들

세부의 작은 마을, 파씰을 아시나요


(여행 중 썼던 일기를 수정, 보완하여 씀)



.

.

.


Cebu

세부.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이며 리조트가 잘 발달된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이다.

직항으로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무비자로 30일 간 체류가 가능하다.

또한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 투어를 경험할 수 있다.

(참고 : 네이버)



11/20 월

l 여행 하루 전


 세부 가기 전에 계획 세우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건 되게 귀찮았는데

막상 검정, 빨강이 섞인 큰 여행용 배낭을 메고나니 설레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이 배낭만 메면 무대포(?)가 되는 것 같다. 조금 뻔뻔해지기도 하고, 겁도 없어지는 것 같다.

물리적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실질적으로 영혼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무래도 ‘자유로운 여행자’라는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것 같다. 이 배낭이.


카페에서 여행 일정을 돌아보다 ‘양을 쫓는 모험’(무라카미 하루키)을 아주 조금 읽었는데,

또 한 번 당연하게도 하루키의 문장력과 비유력에 감탄하고,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이어리에 기록한 여행 계획 일부


 


11.21 화

l 세부로 가는 비행기 안, 반 암흑 속에서 작성



 오늘 아침 11시쯤 집에서 나와서,

12시 버스를 타고 원주로.

그리고 원주에서 다시 5시 버스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수하물 규정에 어긋날까봐 주머니에 이것저것 찔러 넣으며 짐을 덜어냈다. 그래도 긴장...



원주에서 인천공하으로 가는 버스 안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둔 인천공항의 모습
공항 파리바게트에서 먹은 햄에그마요 샌드위치. 파리바게트 안에서 먹고 싶었는데 마감 준비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먹기



 비행기 출발 시각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옆 좌석에 아무도 안 앉길래,

가족 단톡방에 ‘앗싸 나 운 진짜 좋아. 옆에 아무도 안 앉는다!’ 라고 하자마자

두 명의 승객이 탑승했다.

그 와중에 창가자리 못 앉아서 아쉽.


승무원이 세관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용지를 나눠주었다.

볼펜을 꺼내고, 캡쳐해둔 세관신고서 작성법을 보며 작성하고 있었다.

옆 좌석에 앉은 한국인 승객이 이트래블을 작성해왔는데, 세관신고서도 따로 작성해야 하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작성하셔야 한다, 고 말하며 볼펜이랑 캡쳐본을 보여드렸다.


 저가 항공사라 기내는 매우 비좁았다.

12시까지 두 시간 정도 목을 꺾으며 자다가 목이랑 허리가 너무 아파서 깼다.

그러다가 펜을 들었다.

그나마 전 날 세 네시간 밖에 자지 않아서 비행기 안에서 나름 숙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잠까지 오지 않았으면 꽤나 고역의 비행시간이었을 듯..


이제 두 시간 뒤 세부 도착이다.

얼른 도착해서 짐 풀고 눕고 싶다.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하고 싶다.




첫째 날. 상상보다 더, 커다란 즐거움



첫째 날 아침.

밖은 아직 나가지 않았지만 창문 너머로 고온다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전 날 공항에 내리자마자 호빵가게를 지나갈 때 훅 들어오는 뜨겁고 축축한 공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새벽, 숙소에서
해 뜬 세부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아 ‘막심’ 이라는 어플을 깔고 우리나라에서 카카오택시로 택시부르듯, 오토바이를 불렀다.

필리핀에는 오토바이, 툭툭이, 지프니, 그랩 택시와 같이 크게 4종류의 교통 수단이 있다.

그 중 오토바이는 이전 여행에서도 한 번도 탑승해본 적이 없던 터라, 이번에 꼭 탑승해봐야지 싶었다.

첫 오토바이.

설레는 기분으로 헬멧을 쓰고 드라이버 뒤에 앉아 어깨를 잡았다.

헬맷 끈을 조이는 것도 끙끙대는 나. 마지막 날 즈음엔 익숙해지려나.


꽤 많이 신난 모습



 이럴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재밌다.

오토바이 타고 세부 시내를 가르는데 뭐랄까,

자유롭고 시원한 기분이 간질간질하게 올라왔다.


오토바이 위에서 찍은 사진. 필리핀은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애용하는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기도 그만큼 안 좋겠지.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자전거는 덜컹덜컹, 타기 어려우려나



 몇 년 전에 갔던 인도, 네팔과 유사한 느낌의 거리였다.

허름한 간판과 새둥지마냥 엉켜있는 전봇대의 전신줄들, 그리고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사람들.

4년 전, 여행을 할 때 느꼈던 그 낯설고 심장이 두근대는 감각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리 했어야 할 일들을 아직 끝마치지 못한 상태.

아얄라몰 (세부 시내 큰 쇼핑몰 중 하나)로 가서 환전, 비키니, 치약 구입을 해야 했다.


아얄라몰 내부(엄청 커서 치약 사는 거 많이 헤맸다) / 첫 끼를 해결했던 필리핀 국민 패스트푸드점 ‘졸리비’ 기대한 것보다 그냥 그랬던 맛이었다.
싱싱한 과일들. 과도가 있으면 샀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했다.
이 과일은 몇 개사서 입으로 베어 먹었다.



 원하는 수영복이 없어서 고민하다보니 시간이 꽤 흘러 택시를 타고 곧장 ‘파씰’(마을 이름) 로 갔다.


'Pasil'

 여행유튜버들이 세부에 갈 때 자주 들르는 마을인 것 같았다.

찾아보니 빈민촌이었고,

현지인들의 일상 풍경에 호기심이 생겨 가보았다.


들어가기 전, ‘welcome to pasil' 이라는 안내 표지가 아슬하게 걸려있었다.

표지를   스윽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가지 고민이 들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촬영을 해도 괜찮을지,

실례는 아닐지.

외국인 관광객인 내 입장에선 그들이 사는 모습이 궁금하고 신기한 것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그저 일상이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살짝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마을로 들어섰다





 메론 주스나 망고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계셨는데 

필리핀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혹은 한국 문화가 혐지에서 인기가 많으니 특히 한국인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딜 가든 밝은 웃음으로 인사해주셨다.

정말 밝게.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필리핀 식 백반 가게. 아쉽지만 맛이 있어보이지는 않아서 먹지는 않았다.
망고 주스를 하나 사 먹고 주인 아주머니와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웃기게 나와서 안 올렸다. 컵이 아닌 봉지에 담아주셔서 신기했다.
꼬치 가게. 주스를 들고 있는 아이.




 필리핀 식 백반 집, 튀김 가게 등을 뒤로 하고

골목, 그리고 골목, 또 골목으로 계속 들어갔다.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은 초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다가 결국 한 게임 같이 했다.

딱지로 바닥에 있는  다른 딱지를 쳐서 뒤집어야 하는데, 나는 맨바닥에 내려쳐서 스스로도 어이가 없고 웃겼다.


 아예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아 딱지를 치고 있으니

동네 어르신들이 신기한듯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서서 우리를 구경하셨다.

이럴 때 내가 딱지 좀 잘 뒤집어주면 상황이 더 재미있어질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딱지를 던질 때마다 아이들이 자꾸 환호성을 지르길래,

처음에는 ’내가 잘 던진건가?‘ ’아님 못 던져서 그런가?‘ 했는데,

군중심리로 다 같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저 상황 자체가 재밌는 듯 보였다.



골목 골목마다 해맑게 웃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다 거리에서 누가 뜬금없이(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북을 연주하자, 그 북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을 앞세워 따라가보기도 하고


 팬케이크를 굽는 열한 살 아이에게 가서

2페소를 주고 팬케이크 2개를 사 먹기도 했는데,

외국인이 신기한지 어딜 가든 아이들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묘한 즐거움이었다.

그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 때,

신기하게 머릿 속 잡음이 가라앉고 그저 즐거웠다.

(여행이 끝난 후 돌아봤을 때, 이번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이 때였다)


미니 오락실
저녁 식사 중인 사람들


 나는 언제, 무엇을 할 때 즐거움을 느낄까

사실 세부는 리조트를 예약해서 수영도 실컷하고,

마사지도 받고, 잘 쉬다오는 여행지로 유명하긴 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리조트는 가지 않았다.

리조트에서 휴양하는 방식의 여행을 선호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이번에는 별로 내키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빈번하게 찾아가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서 후기를 많이 찾아봐야 했지만,

가고 싶었던 마을을 찾아갔고,

충분히 즐거웠다.

상상보다 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에서 망고를 두 개 사 먹고, 두 개를 더 샀다.

달짝지근한 즙이 흘러 내려 끈적하게 굳은 손으로

따뜻한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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